일본은 '정상적인 민주국가'인가 아닌가

  • 기자명 김수민
  • 기사승인 2019.07.25 09:4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본의 몰염치한 수출규제 그리고 지난 21일 치러진 일본 참의원 선거를 거치며 일본 민주주의에 대한 진단이 자연스럽게 한국 시민들 사이에서 나온다. 이 가운데 가장 간단한 명제는 “일본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흘끗 봐도 일본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자신할 수 없되 굴절되고 희한해 보인다.

일본 정치의 몇 가지 단면을 살펴보면 한국보다도 뒤쳐지는 민주주의의 실상이 보인다. 대표적으로 “일본은 시민 항쟁의 전통이 없다”, “정권교체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장기집권이 진행되었다”, “양당제도 다당제도 아닌 1.5당제로 사실상의 자민당 독재이다”라는 평가가 있다. 4.19부터 2017년 촛불항쟁에 이르는 범국민항쟁의 역사, 6월항쟁 이후 점진적 민주화를 거쳐 1997년 이뤄낸 수평적 정권교체의 첫 사례와 두 번 더 이뤄진 정권교체의 이력, 양당제와 다당제를 오가며 정치모델에서 미국식과 유럽식을 모두 탐색하는 현황. 이런 한국 정치 옆에 놓여진 일본 정치가 낙후되어 보이는 것은 현실이다.

다만 일본 정치를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일본의 일그러진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요소들, 그중에서도 ‘뒤쳐진 민주주의’로 비쳐지는 요소들을 차분히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이미 한국 학계는 북한 이해를 목적으로 ‘내재적 접근’을 시도한 바 있다. 그 취지는 ‘북한이 왜 저렇게 되었는지 북한 입장에서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작업은 물론 북한 체제에 대한 심층 연구가 따라줘야 한다. 그렇다면 일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가. 여기서 우리는 가장 쉬운 방법을 하나 잡을 수 있다. 가장 잘 알고 있는 정치가 한국정치라면, 한국과 일본의 유사점을 찾아보는 것이다.

 

일본도 ‘안보투쟁’이란 시민항쟁의 역사가 있다

우선 일본에서 국민적 항쟁이 없다는 진술은 틀렸다. ‘안보투쟁’이 있기 때문이다. 1951년 미일안전보장조약으로, 연합국군 가운데 일원으로 일본을 점령했던 미군이 ‘주일미군’의 지위를 얻어 일본에 상주하게 되었다. 이는 소련을 적대시하는 냉전을 띠고 있기도 했다. 안보조약은 1960년에 이르러 신조약으로 개정되며 ‘일본이 미군 기지를 제공한다’는 수준을 넘어 미일공동방위로 올라섰다.

그 사이 일본의 평화운동은 무르익었다. 오키나와 미군기지 건설 반대 운동이 대표적이다. 비키니섬의 어선이 미국의 수소폭탄 실험에 피폭되자 자연스레 반핵운동도 일어났다. 이러한 흐름이 결집해 1959년 3월, 일본의 진보정당인 사회당과 공산당 그리고 일본노동조합 총평의회를 포함한 1백여 개 이상의 사회단체가 ‘안보개정저지 국민회의’를 출범시켰다.

1960년에 벌어진 일본의 안보투쟁의 한장면.

 

하필 이 당시 조약을 밀어붙인 핵심 주체는 기시 노부스케 총리였다. A급 전범 용의자였고 아베 신조 현 총리의 외조부다. 기시 내각이 5월 19일 조약 개정안을 중의원에서 폭력적으로 통과시키자 대중 항쟁이 일어났다. 탄압일변도인 공권력과 거세게 충돌했던 이 항쟁은 조약 개정을 막아내지는 못했지만, 기시 내각의 퇴진을 이끌어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방일도 취소되었다. 시위 규모는 주최측 발표 기준으로 33만 명까지 늘어나며 일본 국회와 총리 관저를 에워쌌다. 경시청 집계로는 13만 명. 집회 인원에 대한 집계에서 주최측과 경찰기관이 이렇게 다른 것이 한국의 몇몇 대규모 시민항쟁과도 닮았다.

물론 한국의 시민항쟁과 크게 다르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일단, 외래 의제에 관한 투쟁이 아니었는가 하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안보 이슈가 시위를 일으킨 적이 여러 차례다. 주한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청소년들을 추모하며 미국 정부에게 사과를 요구한 2002년 촛불항쟁이 있었다. 이는 2003년 이라크파병반대운동과도 연결된다. 미국이 연루되었다는 점에서 안보투쟁과 닮았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관련된 2008년 촛불항쟁도 있다. 2008년 촛불항쟁의 일부 세력은 2006년 한미FTA 추진 당시부터 궐기했고, 2011년 11월 한미 FTA 국회 비준과 2012년 총선을 즈음해서도 반대운동이 다시 일어나기도 했다. 박근혜 퇴진을 이뤄낸 2016-2017 촛불항쟁에서도 사드 배치 반대운동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가담하기도 했다.

일본 안보투쟁은 4.19혁명, 부마항쟁, 광주항쟁, 유월항쟁, 2016-2017 촛불항쟁처럼 정권퇴진운동의 성격도 강했다. 기시 내각의 국회 통과 공작은 정면으로 민주주의를 위반하는 것이라고 판단한 시민들은 내각 총사직과 국회 해산을 외쳤다. ‘운동권’ 수준을 넘어서서 비조직 대중의 광범위한 참여가 이뤄진 점도 안보투쟁의 특징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1960년이라는 시점을 감안하면, 옆나라 한국의 4.19혁명이 안보투쟁을 더 자극하고 고무했음을 헤아려야 한다.

안보투쟁 이후 안보조약과 일본 집권세력은 더 공고한 지위를 굳혔다. 그러나 이런 ‘미완의 항쟁’, ‘실패한 투쟁’의 면모는 4.19혁명, 부마-광주항쟁, 6월항쟁, 2008년 촛불항쟁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물론 한국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안보투쟁 이후 일본에서 대규모 항쟁은 자취를 감추었다는 것이다. 1970년경 다시 일어난 안보투쟁은 신좌파를 자처하는 격렬한 학생운동 사이에서만 머물렀다. 결정적으로 일본에는 대규모 항쟁을 소화하며 정권교체를 성취할 야당이 없었고, 그 상태에서 사회운동의 폭력적 경향에 대중은 등을 돌렸다.

여기서 한국과 일본의 차이가 극명하게 갈린다. 그렇다면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를 긍정할 일이지, ‘일본에는 대규모 항쟁의 역사가 없었다’고 넘길 일은 아니다. 중앙정치가 조용하고 정체된 대신 지방자치와 풀뿌리운동이 발달했다는 일본 정치의 이면도 짚어봐야 한다.

 

'장기집권'하면 민주주의가 아닌가

일본 자민당이 정확히 몇 년 몇 달을 집권했는지 계산하기는 난망하다. 국회의원 임기 중에도 의회는 해산될 수 있고, 장수한 총리와 단명한 총리들이 엇갈린다. 다만 기존의 유력정당이던 자유당과 민주당이 1955년 자유민주당으로 합당한 이래 자민당은 대부분의 기간을 원내 제1당으로 군림해왔다.

1993년 일본신당, 일본사회당, 신생당, 공명당, 신당사키가케, 민사당, 사회민주연합·민주개혁연합 등이 힘을 합쳐 자민당이 연립여당 명단에서 빠지는 사건이 벌어진다. 1994년 자민당이 연립여당에 끼어드는 재변동이 일어나지만, 사회민주당이나 신당 사기가케도 연립여당에 자리를 잡거나 각외협력(내각 참여는 하지 않되 내각의 출범과 운영에 협력하기)을 했다. 1998년 오부치 게이조 총리부터 자민당의 독주는 강화되었다가, 2009년부터 2012년까지 민주당 주도 내각이 성립되었고, 다시 정권이 교체되어 아베 총리가 지금까지 집권중이다.

2017년 10월 23일 치러진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당선자 이름에 꽃을 달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jtbc 화면 캡처.

 

일본 정치에서 정권교체가 드물고, 특히 비-자민당 정권의 역사가 짧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 국가의 정치체제가 민주주의체제인지 아닌지를 가리는 가장 간명한 기준은 역시 ‘정권교체 가능성’이다. 정치결사의 자유, 집회 및 시위의 자유, 언론의 자유, 선거 공정성이 모두 뒷받침되지 않으면 정권교체 가능성은 열리지 않는다. 형식상 민주선거를 치르더라도 답은 정해져 있고, 국민들의 정치 무관심은 강해진다. 권위주의 독재로 분류할 수 없을지라도 마냥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는 없다.

하지만 장기집권 자체가 민주주의 위배는 아니다.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은 1932년부터 44년동안 장기집권하면서 국민경제와 복지국가를 건설했다. 일본 자민당이 여러 정당과 돌아가며 공동으로 집권했고 최근에 공명당과의 연립을 굳혀왔듯이, 스웨덴 사민당 역시 농민당과의 연합으로 정권을 창출하기도 했고 단독 정권도 오래 유지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운위한 ‘민주당 20년 집권’도 민주주의 위반이 아니다. 민주당이 장기집권을 모색하면서 부설연구소인 민주연구원이 펴낸 ‘대한민국 중심정당의 길’은 민주주의이면서도 장기집권을 하는 정치체제에 대해 ‘중심·주변 정당체제’라는 개념과 명칭을 붙이고 있다. 그것은 “여당의 분열 또는 파국적 사건으로 주변정당인 야당이 간헐적으로 집권하더라도 연속 집권이 불가능한 체제”로 정의되는데, 그 사례로 일본 자민당과 스웨덴 사민당이 동시에 거론되고 있다.

물론 스웨덴 정치와 일본 정치는 차이점이 더 커 보인다. 이점은 각국의 정치문화, 선거제도, 권력구조(정부형태) 등을 상세히 따져 가릴 일이다. 장기집권 자체가 민주주의가 아님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1당독주하면 독재? 한국내 정치를 돌아보라

이쯤이면 “장기집권만이 아니라 1당이 독주하는 게 문제”라는 지적이 들어올 것이다. 전후 대부분의 기간을 독차지하다시피 하며 집권한 자민당이 일본 정치의 독주 정당임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독주 정당은 한국내에도 있다. 특정 지역에서 특정 정당이 독주하는 현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영남에서, 특히 대구나 경북에서는 자유한국당 계열 정당이 지방선거나 총선에서 꾸준히 압승해왔고, 호남에서는 1당독점과 양당제가 번갈아 일어나면서 자유한국당 계열 정당과 진보정당 양쪽을 억눌러왔다. 일본 자민당을 위시한 집권세력과 그 개헌 동맹자들은 참의원과 중의원 양측에서 2/3에 다소 못 미치거나 그것을 거꾸로 웃도는데, 한국의 특정 지역에서 특정 정당의 독주하는 수준은 그에 못지 않거나 그 이상이다.

당연히 여기서 한 가지 커다란 의문이 들 수 있다. 일본이라는 한 국가의 정치와 한국의 특정 지역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는가. 하지만 ‘일본’은 한 국가인 동시에 한 지역이다. 1당 독주에는 내인과 외인이 모두 있다. 우선 내인으로는 1당이 득표율에 비해 너무 과도한 의석을 점하는 1등 위주 선거제도를 들 수 있다. 그런 한편, 외부 요인에 대응하기 위해 그 지역이 1당 독주를 선택하게 되는 요인이 있다.

독재 정권기에 한국의 농촌 지역은 농지개혁과 새마을운동 등을 거쳐 빠르게 국가권력에 포섭되었다. 그러면서도 산업화에 따른 수혜 수준은 영남과 호남이 크게 엇갈렸다. 영남 시골의 젊은이들은 가까운 지역 공단에 취업했지만, 호남 시골의 젊은이들은 보다 먼 거리를 이동해 고향을 떠나야 했다. 이런 각각의 사정 때문에 국가의 권력과 자원을 배분받는 데 ‘지역’은 중요한 고리로 쓰였다. 그리고 1987년 대선과 1988년 총선에 즈음하여 성립된 지역정당체제는 이런 경향을 본격화했다. 최근 불어닥친 동북아 정세 격동에도 지역별 대응은 다를 수 있다. 지역은 전국이나 국제관계의 영향을 받으며, 어떤 지역은 특정 정당을 밀어준다.

많은 이들이 단적으로 아는 일본만 해도, 냉전 시기부터 미국과 동맹관계이며, 중국이나 러시아 그리고 한국과는 과거사부터 경제협력까지 양면적인 관계를 맺고 있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는 특히 사이가 나쁘다. 이런 가운데 자민당 독주와 안보투쟁은 작용-반작용에 해당할지 모른다. 경제모델에서도 애초부터 현대 일본은 유럽이나 미국과 달랐다. ‘1당독주라서 민주주의가 아니다(사실상 독재다)’라는 단언이 아니라, 일본 정치가 1당독주를 선택해온 과정을 훑고 꿰뚫는 내재적 접근이 절실하다.

 

한국ㆍ일본 ‘결함 있는 민주주의’ 중에서는 최상위권

마지막으로, 객관적 또는 제3자적 입장에서 한국과 일본 양국의 민주주의를 점검해본다. 여기서는 영국 <이코노미스트> 산하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conomist Intelligence Unit. EIU)이 2006년부터 발표하는 ‘민주주의 지수’를 놓고 본다.

상위 20위이자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되는 나라들은 다음과 같다. 1위 노르웨이, 2위 아이슬란드, 3위 스웨덴, 4위 뉴질랜드, 5위 덴마크, 공동 6위 캐나다 아일랜드, 8위 핀란드, 9위 오스트레일리아, 10위 스위스, 11위 네덜란드, 12위 룩셈부르크, 13위 독일, 14위 영국, 15위 우루과이, 16위 오스트리아, 17위 모리셔스, 18위 몰타, 19위 스페인, 20위 코스타리카.

2017년 이코노미스트 민주주의 지수 지도. 파란색일수록 민주주의에 가깝다.

기대감을 갖고 읽은 독자들을 위해 다음 순위를 조금 더 읊는다. 21위 대한민국, 22위 일본. 우루과이나 코스타리카보다 못한 점수를 얻었을지 미처 대비하지 못한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한국은 8.00점을 획득하여 미세한 차이로 ‘결함 있는 민주주의’로 분류되었다. 일본은 7.99점이다. 아시아에서는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애매해 보이는 결과지만 미국(7.96점/25위), 프랑스(7.80점/29위)보다 더 높다는 데에도 주목하면 한국과 일본 민주주의를 긍정적으로 탐색할 여유를 얻을 수 있다.

민주주의 지수에서는 5개 항목 기준이 있다. 잠시 한일전을 펼쳐보자. ▲선거과정과 그 다원성: 한국 9.17점 대 일본 8.75점. ▲정부의 기능성: 한국 7.86점 대 일본 8.21점. ▲정치참여도: 한국 7.22점 대 6.67점. ▲정치문화: 한국 7.50점 대 일본 7.50점. ▲시민자유: 한국 8.24점 대 일본 8.82점. 한국은 일본보다 선거과정이 더 국민들의 다양성에 부합하며 시민들의 정치참여도 더 뜨겁다. 반면 정부가 제 기능을 하는 수준은 일본이 더 높고 일상적인 자유도 더 높다. 정치문화는 거기서 거기다.

‘양국이 2승 1무 2패를 거둔 것이다’라고 말하면 유치하게 들릴 것이다. 그러나 그에 비할 수 없이 유치한 것이 있다. 수출규제로 도발을 걸며 전세계를 경악시킨 일본 정부가 그렇다. 또 현재의 한국사회를 ‘종속된 신식민지’쯤으로 자가진단하는 자학공갈이나 일본산 제품을 구매하는 동료 시민을 공격하는 일부 네티즌들도 그러하다. 물론 가장 극악한 것은 ‘정한론’을 다시 들고 나오는 혐한 극우 네티즌들일 것이다.

그러나 한일 양국의 정치는 상이한 만큼 닮기도 했고, 민주주의 수준을 놓고 제법 수준 있는 경쟁을 펼치고 있다. 한일간 시민운동 연대의 여지는 동해보다는 태평양에 가까워 보인다. 이러한 진실들을 긍정해야 외교정상화든 정치개혁이든 돌파구가 열릴 것이다.

 

[참고문헌]

이시카와 마스미(박정진 옮김), <일본 전후 정치사>, 후마니타스, 2006.

홍기빈, <비그포르스, 복지 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 책세상, 2011.

이진복·박혁, <대한민국 중심정당의 길: 대한민국을 바꾸는 담론연구1>, 민주연구원, 2018.

위키백과, 민주주의 지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