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에 주미대사가 교체되었다. 신임 대사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물은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 문정인 교수였는데, 막상 뚜껑이 열리고 보니 더불어민주당 소속 비례대표 국회의원인 이수혁 의원이 임명을 받았다.
이에 대한 정부의 공식 입장은 그저 적임자를 뽑았다는 것으로, 별다른 이야기는 나온 바가 없다. 그런데 미국의 존 허드슨이라는 외교・안보 분야 전문 취재기자가 본인의 트위터에서 “문정인이 주미 한국대사로 취임하지 못한 건 미국 정부가 거부 의사를 표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파문이 일었다. 이에 대해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매우 부정적인 견해를 표출했다.
하지만 이는 전혀 다른 사례적용이다. 기업 경영자에게는 노조위원장 선출 결과를 거부할 권리가, 여당 대표는 야당 대표를 거부할 권리가 없다. 하지만 주권국가에는 자국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관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그것이 바로 아그레망(불어: agrément)이다.
김종대 의원은 타국에 주재할 외교관의 인선이 우리 주권에 해당하는 문제로 해당 주재국이 이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주권 침해라고 보는 듯하다. 하지만 이는 옳은 견해라고 인정할 수 없다. 외교관은 일종의 손님이며, 해당 주재국은 주인의 권리로서 기피 대상 인물이 자국 주재 외교관으로 취임하는 사태를 거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 일본에서 아베 수상을 편들어 반한 발언을 일삼는 극우 인사가 주한 일본 대사로 보내진다고 생각해 보자. 김종대 의원의 견해대로라면 한국 정부에서는 이를 순순히 받아들여 수락하고, 일본 정부에 교체를 요구해서는 안 될까?
대부분의 경우 외교관을 파견할 때는 해당 국가와 사이가 좋지 않거나 충돌할 만한 인사를 피한다. 상대국에 아그레망, 즉 거부권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그레망을 거부하여 상대방의 외교관을 거절하는 행위는 외교갈등을 유발하므로 웬만해서는 행사되지 않는다.
하지만 해당 외교관이 주재국에서 용납할 수 없는 행위를 저지른 전적이 있거나, 두 나라가 정치적으로 적대관계에 있을 때, 또는 외교적인 압력을 가하려 할 때는 아그레망을 거부하여 상대국을 압박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최근의 사례다. 독일 정부는 그 사유는 명확하지 않으나, 신임 북한 대사에게 아그레망을 내주기를 거절했다. 북한 정부는 4월에 해임하여 국내로 소환했던 전임 대사를 다시 독일로 보내야 했고, 두 번이나 아그레망을 거부당한 끝에 2017년 4월에 겨우 신임 대사를 보냈다.
비슷한 시기에 이탈리아도 북한에 대한 아그레망 승인을 바로 해주지 않고 시간을 끌었다.
북한은 아그레망을 거부당하기만 하지 않는다. 자기들도 타국에서 보내는 외교관에게 아그레망 부여를 거절하곤 한다. 심지어 그 상대가 중국이다.
중국이라고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중국도 북한 대사에 대한 아그레망을 거부한 사례가 있다. (北傀(북괴),駐中共大使徐哲(주중공대사서철)임명 中共(중공)선 아그레망拒否態度(거부태도). 동아일보, 1977.03.05)
북한은 정상적으로 굴러가는 나라가 아니니까 예외적인 취급을 받아도 되는 걸까? 아니다. 한국도 아그레망을 거부당한 적이 있다. 1962년에는 라오스 정부가 아그레망을 거부한 바람에 대사를 보내지 못했고, 1972년 사회주의 국가가 된 마다가스카르가 우리에 대한 아그레망을 거부한 사례((韓(한)-마다가스카르共(공) 대사급외교관계 재개. 경향신문, 1993.05.20)도 있다. 우리도 1973년 5월에 덴마크가 북한과 수교하자 이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신임 덴마크 대사에게 아그레망을 보류했다.(한국외교 25년의 진화-박대통령의 「6·23」특별선언을 계기로 되돌아 본 변천사. 중앙일보, 입력 1973.06.23. 00:00)
물론 이런 아그레망 거부도 상대를 봐 가면서 하는 거다. 우리 입장에서는 일본이나 미국, 중국이나 러시아를 상대로 아그레망 거부를 선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러기 일보 직전까지 간 적이 2번 있었다.
1965년, 진통 끝에 한일수교가 맺어졌다. 그런데 초대 일본 대사로 한일회담 당시 외무성 아세아국장이었던 전문외교관 이세키 유지로(伊關佑二郎)가 온다는 소문이 퍼지자 한국에서는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다. 야당에서는 이세키의 부친이 총독부 관리였다는 점을 문제삼았고, 다른 이들도 한일회담에서 일본 측의 이익을 위해서 애쓰던 이세키가 대사로 부임하는 것을 거북해했다. 여러 경로를 통해 불만 의사를 계속 표한 덕분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한국 주재 초대 일본 대사는 결국 이세키가 아닌 다른 사람이 부임했다. 아그레망 거부를 고려하던 한국 정부로서는 그 카드를 쓰지 않아도 되었다.
두 번째는 상대가 미국이다. 1989년, CIA 장기 근속자로 유신정권 시절 한국에서도 근무한 경력이 있는 도널드 그래그 신임 미국 대사의 정보기관 경력은 많은 이들에게 경계심을 샀다. 그래서 그래그의 아그레망을 거부하라고 요구하는 이들이 많았다.(하필이면 정보전문가를 주한대사로, 한겨레, 1989.01.13.)
필자로서는 미국 정부가 실제로 문정인 특보의 주미대사 임명에 관해 거부감을 표했는지 혹은 다른 이유로 후보에서 떨어졌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위와 같은 사례들로 볼 때, 미국 정부에서 만약 문정인을 꺼렸다면 저들에게는 당당하게 문정인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공개적으로 아그레망을 거부하여 한미간에 충돌이 있다고 공표하기보다 사전 교섭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음을 먼저 알리고 임명을 철회하게 만드는 편이 나은 것도 사실이다.
만약 김종대 의원의 주장처럼 문정인 특보 임명에 대한 반대기 미국 정부의 외교 농단이자 우리에 대한 주권 침해라면, 우리 역시 과거에 타국에 대해 여러 차례에 걸쳐 외교적 농단을 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덤으로 덧붙이자면, 정치적인 문제와는 무관한 문화적 요인으로 아그레망이 거부된 사례도 있기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