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열단·6.10만세운동·광주학생운동까지 '민족을 변호하다'

  • 기자명 정재환
  • 기사승인 2019.09.16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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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5월, 경상남도 평의회 석상에서 김기정 평의원은 ‘조선에서는 보통학교를 증설할 필요가 없으며, 교육도 필요하지 않다. 보통학교를 마치고 나면 사상이 악화되어 위험하므로 학교를 늘릴 필요가 없다.’면서 교육 예산 삭감을 주장했습니다. 조선인들을 가르칠수록 사회 불안만 가중되니, 조선인들은 가르치지 않는 게 낫다는 황당한 망언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망발에 분노한 통영 주민들이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 민중대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낌새를 챈 김기정은 한 발 먼저 주동자들을 경찰에 신고하였고, 경찰은 발 빠르게 관련자들을 검거했습니다. 이번에는 분노한 군민들이 김 씨의 집으로 달려갔고, 욕설을 하고 돌을 던지는 등 거칠게 항의하는 소동을 벌였습니다. 결국 이 사건으로 30여 명이 검거되었고, 그 중 박봉삼 목사, 서상권, 김재학, 최천 등 23명이 기소되어 법정에서 유무죄를 가리게 되었습니다.

피고인들의 변호를 맡은 이인은 ‘조선인의 교육을 부정함은 민족을 멸망시키자고 하는 것과 같고, 김기정의 망발에 대한 군민들의 의분은 정당하다,’는 취지의 변론을 준비했으나, 9월 19일 열린 공판에서 이시무라 재판장은 개정벽두에 피고인들의 이름과 나이, 주소 등을 묻는 인정신문만을 했고, 서기로 하여금 예심종결결정서를 낭독케 하였으며, ‘피고들의 죄상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결심한다.’며 퇴정했습니다.

변론을 맡은 애산 이인뿐만 아니라 일본인 검사조차 휴정이라는 말 한마디 없이 나가는 판사를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재판의 기본 절차조차 무시하는 판사의 태도를 방관할 수 없었던 이인은 2층 판사실로 들어가는 이시무라를 붙들고, ‘왜 재판을 하다 말고 이말 저말도 없이 나가버리느냐? 사실심리조차 없는 공판은 공판이 아니다.’라며 거세게 항의했습니다.

“지금 재판하지 않았느냐?”

어처구니없는 대답에 이인은 ‘그게 무슨 재판이냐? 예심결정서를 낭독하고 결심이라니, 이렇게 하면 재판할 필요가 무엇이냐? 당신은 법률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그러니 재판장할 자격도 없소.’라고 쏘아붙이며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일제치하라 해도 형사소송법상 피고에게 한마디 질문도 없이 끝내는 재판은 그야말로 법으로 법을 깨부수는 행위였습니다. 1시간 가까이 격론을 벌인 끝에 이시무라는 결국 이인에게 사과하였고, 재판은 오후에 다시 열렸습니다.

이인은 선배인 허헌, 김병로 변호사와 함께 사상변호사, 민족변호사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변호사가 되어 처음 맡은 사건은 의열단사건이었고, 독립투사 오동진사건, 독립투사 이응서사건, 창원소작쟁의사건, 6.10만세운동사건, 간도사건 등등 독립운동을 하다가 피체된 투사들과 농민과 노동자들, 학생들을 무수히 변호하면서 일제의 요시찰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1929년 10월 30일 오후 5시반경 광주발 통학열차가 나주에 도착하였을 때, 일본인 학생 몇 명이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3학년 학생 박기옥ㆍ이금자ㆍ이광춘 등의 댕기 머리를 잡아당기면서 모욕적인 발언과 조롱을 하자,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박기옥의 4촌 남동생이자 광주고등보통학교 2학년생인 박준채 등이 격분하여 일본 학생들과 주먹다짐을 벌였는데, 출동한 역전 파출소 경찰은 일방적으로 일본인 학생을 편들며 박준채를 구타하였습니다.

11월 1일 광주역에서 또 한 차례의 충돌이 발생했습니다. 통학생도 아닌 일본인 중학 5학년 학생 4, 5명이 광주고등보통학교의 정세면에게 시비를 건 때문이었습니다. 양교의 교사들이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현장에 왔으나 일본인 중학교 교사들은 중학생들을 오히려 선동하였으며, 이런 태도로 인해 교사끼리의 교섭도 여의치 않아 옥신각신하다가 간신히 동시 퇴각에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10월 30일 이후 고조되어 가던 광주고등보통학교를 비롯한 광주 학생들은 ‘독서회중앙본부’를 중심으로 결집해 11월 3일 항일 시위를 전개했습니다. 광주학생운동이 시작된 것입니다.

광주학생항일운동 사진.

공교롭게도 11월 3일은 일왕 메이지의 생일인 명치절이었고, 음력 10월 3일로 개천절이었으며, 광주 학생들의 독서회원들에게는 전신인 성진회 창립 3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이날 광주고보 학생들은 신사참배를 거부했습니다. 오전 11시경 우편국 앞에서 신사 참배를 하고 돌아오던 일본인 중학생들과 광주고등보통학교의 최쌍현 등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 최쌍현이 단도에 찔려 코와 안면에 부상을 입었습니다. 주변에 있던 광주고보 학생들이 일본인 학생들을 공격했고, 일본인 중학생들은 광주역 쪽으로 도망쳤지만, 계속 추격해 구타했습니다.

급보를 전해들은 광주중학 기숙사생 백수십 명이 목도와 단도 등을 들고 ‘고보생타도’를 외치면서 현장으로 달려왔으며, 광주고등보통학교ㆍ광주농업학교 학생들도 소식을 듣고 역 앞으로 몰려와 양자 간에 치열한 격투가 벌어졌습니다. 이날 발생한 부상자는 광주중학교 측 16명, 광주고등보통학교 측 10명이었습니다. 이후 상황은 뇌관이 터진 듯 작열하여 광주고보뿐만 아니라 광주사범학교,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등이 가세해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는 항일투쟁으로 발전했지만, 11월 12일 벌어진 대규모의 2차 시위가 일경의 폭력적인 진압과 검거로 좌절되었습니다.

검거된 학생들을 위해 이인을 비롯한 20인의 조선인 변호사들이 무료 변호인단을 구성했습니다. 공판을 앞두고 이인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의견을 들을 여유가 없었기에 공판에 넘어갈 학생 150명을 집단으로 면회했습니다. 학생들은 갇힌 신세였음에도 전혀 기가 죽지 않았고 씩씩했으며 일제에 대한 투쟁 의지는 매우 굳건했습니다.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은 이인은 ‘이 정신 이 기백을 길이길이 잊지 맙시다.’라고 했습니다. 일경의 감시 아래 진행된 면회여서 위험한 발언이었습니다만, 학생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마음을 전하기 위한 표현이었을 겁니다.

1925년 수원고농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상록수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학생들은 ‘계림흥농사’라는 단체를 조직하고 이상농촌 건설을 표방하는 양 위장전술을 쓰면서 조선독립운동을 모의했습니다. 학교 안에서 학생들이 직접 생산한 농산물 품평회를 겸한 학예회가 열렸는데, 이때 출품된 습자작품 가운데 민족, 자유, 독립 등의 표현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전부터 학생들의 활동을 감시하던 일경은 불순세력 소탕이라며 수사에 착수했고, 무려 220여 명을 검거하여 서울로 송치했습니다.

일제는 2년 가까이 예심을 진행하며 학생들에게 혹독한 고문을 가하고 나서야 재판에 회부했습니다. 이인, 김병로, 신태악, 김용무 등이 변호에 나섰습니다. 공판이 열리자 이인은 5시간 동안 이어지는 변론을 통해 학생들의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동양의 평화를 위해서는 한중일 3국이 정립하여 상호간의 발달을 도모하고 나아가서는 인류 문화 복지에 공동 참여한다는 것이 한일합방 때 일본이 표방한 취지가 아니냐. 그런데 이제 와서 한민족을 노예시하고 차별하니 일본에 대한 감정이 악화함은 오히려 당연한 결과이다. 양부모의 학대에 견디지 못할 지경이면 양자는 친부모를 그리워할 것이요, 그리하여 친가의 옛일을 다시 생각함은 인지상정이다. 일본의 식민정책은 이와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 아니고 뭣이냐.”

강도 일본을 양부모에 비유한 것이 몹시 어색합니다만, 일제의 법정에서 달리 표현할 방도가 없었을 겁니다. 여하간 양부모가 양자를 학대할 때 친부모를 그리워하고 되찾고자 하는 것, 즉 조선의 독립을 도모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는 주장이었습니다.

“인간이란 원래 굶주리면 식물을 찾고 결박되었을 때는 자유와 독립, 해방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본능이니 학생들이 자유를 갈망하는 것은 이 본능에 의한 양심적 발로이고 역사적 필연이라 할 것이다.”

공판이 끝난 후에 미우라 검사는 이인을 끌고 가 변론이 불온하다며 구속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앞으로 이어지는 재판에서 변론에 영향을 주기 위한 것이었지만, 이인은 자신의 생각을 조금도 굽히지 않고 학생들을 위해 변론했습니다. 결국 이 변론으로 이인은 총독부로부터 6개월의 정직처분을 받았습니다. (2편에서 계속)

 

*참고문헌

최영희ㆍ김호일, 「애산 이인」, 애산학회, 1989.

애산 이인, 「애산여적」 제4집, 애산학회, 2016.

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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