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왜 서초동 촛불시민은 '톨게이트 투쟁현장'에 오질 않나

  • 기자명 뉴스톱
  • 기사승인 2019.10.15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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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꼰대스럽다. 도대체 어떤 독자를 염두에 두고 이런 글을 썼을까? 이광수 교수의 <왜 노동계는 '조국수호' 집회에 참여하지 않는가>라는 글을 읽는 내내 든 생각이다. 그의 주장에 근거로 동원된 역사적 사건 모두가 1970~80년대의 것들이다.

그 사이 대통령만 8번이 바뀌었다.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에 이어 ‘4차 산업혁명’이 논의되고 있다. 한때 사회주의자였던 청년은 자유주의자로 말을 갈아탔고, 수십억대 자산가이자 억대 연봉의 서울대 교수로, 그리고 권력의 심장부 청와대 민정수석과 법무부장관으로 변신했다.

최근 민주노총에 가입하는 이들 대부분이 1980~90년대에 태어난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그런데 조국이라는 인물을 수호하기 위해 ‘비정규직’이란 단어도 존재하지 않던 시절 얘기만 들먹이신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반론을 써야 할지 정신이 아득하다.

“노동운동은 바로 이 민주화의 물결이 다시 도도하게 타오르는 시점부터 다시 일어나기 시작한다. 정치 운동이 거세지면서 탄압하는 권력의 힘이 약해지는 시기가 되어야 노동운동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이광수 교수는 정치 민주화와 노동자 투쟁의 상관관계를 이렇게 요약하며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이 곧이어 7·8·9월 노동자대투쟁으로 이어진 역사를 들먹인다. ‘검찰 개혁’으로 상징되는 정치(민주화)운동에 광범하게 동참해야만 이후 노동운동이 일어날 기회를 잡게 될 테니 노동계가 ‘조국 수호’ 촛불에 와야 한다는 것이다.

조국이라는 인물 수호가 어째서 정치(민주화)운동이라는 것인지도 이해할 수가 없지만, 1970~80년대에나 적용될 수 있는 주장을 21세기까지 확장하려는 시도에는 더욱 동의할 수가 없다. (사실 이광수 교수 주장이 1980년대 역사 해석에도 적절한가에 큰 의문이 있지만, 그것까지 따지려면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생략한다.)

이를테면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가장 거대한 노동자투쟁으로 기록된 1996~97년 민주노총 총파업을 떠올려보자. 이 투쟁 전후로 한국에서 정치(민주화)운동이 크게 벌어졌다는 얘기는 들어본 바가 없다. 오히려 김영삼 정권이 당시 노동악법과 함께 날치기 통과시킨 안기부법에 맞서는 시민사회운동진영조차 주요 투쟁동력을 민주노총 총파업에 의존해야 했다.

사실 1990년대 이후의 역사는 이광수 교수 주장과는 정반대의 사례, 즉 노동운동이 도도하게 타오르면서 탄압하는 권력의 힘이 약해져야 정치(민주화)운동이 꽃을 피울 수 있게 된 사례가 일반적이다. 가장 최근의 사례로 보자면 민주노총 한상균 집행부가 총파업·총궐기로 박근혜 정권에 정면으로 맞섰던 역사가 있다.

당시 콘크리트 지지율로 온갖 선거를 승리로 이끌며 독재권력을 강화한 박근혜를 상대로 “정권 퇴진”을 내걸고 싸운 조직은 민주노총이 유일했다. 그 대가로 2015~16년 동안 한상균 위원장을 비롯해 수십명의 노동운동 지도자와 투사들이 감옥에 갇혔고,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검·경의 수사대상에 올라 희생을 치러야 했다.

그 과정에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졌고, 이에 맞선 거대한 촛불운동이 시작된다. 어떤 희생에도 불구하고 박근혜에 맞서 싸웠던 민주노총 사무실이 자연스럽게 박근혜 퇴진 국민행동(‘퇴진행동’)의 거점이 되었고, 민주노총의 모든 실무역량이 1,600만 촛불의 불쏘시개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1996~97년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 통과에 맞선 총파업, 2015~16년 박근혜 퇴진을 위해 나섰던 총궐기·총파업의 역사는, 노동운동의 도도한 진출이 독재정권의 예봉을 꺾어줌으로써 정치(민주화)운동 진출의 길을 열어준 중요한 사례를 보여준다. 이광수 교수가 쌍팔년도 사례만 들먹인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 이후 역사는 그의 주장이 틀렸음을 입증해주기 때문이다.

 

노동존중은 개뿔, 재벌존중 추구하는 문재인 정부

87년 6월 항쟁이 없었더라도 노동자대투쟁은 벌어졌겠지만, 그것이 87년 7·8·9월에 곧바로 벌어진 점은 6월 항쟁에 분명히 빚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1996~97년 총파업, 2015~16년 총궐기가 없었더라도 노동자·민중이 언젠가는 독재정권을 넘어섰겠지만, 그토록 빠른 시간 안에 독재정권을 식물정권으로 만든 데에는 민주노조운동에 분명히 빚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노동자들은 조·중·동이 얘기하는 ‘촛불 청구서’ 같은 걸 들이밀 생각 전혀 없다. 박근혜 정권에 맞서 싸운 민주노조운동에 사심(?) 비슷한 게 있다면 오로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열망” 뿐이다. 민주노조운동이 문재인 정부에 들이밀고자 하는 것은 청구서가 아니라 약속 위반에 대한 심판이다.

‘노동존중’을 표방한 문재인 정부가 지킨 노동공약이 도대체 뭐가 있는가? 우선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실현 약속을 파기한 점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공개사과를 한 바 있으니 일단 생략하기로 하자. 소리가 요란하게 출발했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라는 말은 이제 정부 문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기간제(계약직) 정규직 전환은 고용만 유지될 뿐 임금은 비정규직 시절과 똑같은 무기계약직 형태였다. 이 정도 수준의 정규직화는 박근혜 정권에서도 한 것이다. 차별점이 있다면 용역·파견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도 정규직 전환대상에 포함시킨 것인데, 이 역시 또다른 용역업체에 불과한 ‘자회사’로 흡수하는 가짜 정규직화가 대부분이었다.

노동시간을 단축해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공약은 어떤가. 1주일은 7일이라는 상식을 무시하고 1주일이 5일이라 주장하는 어이없는 행정해석만 고치면 될 것을, 굳이 근로기준법 개정 논의에 붙여서 노동시간 단축시점만 늦춰놓았다. 설상가상으로 휴일근로시 가산수당을 50%로 낮추는 입법까지 이뤄져 멀쩡한 임금이 삭감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어디 그뿐인가. 노동시간 단축 입법 이후에도 재벌과 자본가들의 사보타지가 계속되자 근로감독과 처벌을 면제해주는 특혜를 베풀었다. 심지어 고무줄처럼 노동시간을 늘렸다 줄였다 할 수 있도록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6개월로 확대하고 연장수당을 삭감하는 입법까지 밀어붙이려 한다. 도대체 노동시간 단축으로 늘어난 일자리가 있기는 한가?

특수고용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해놓고 경사노위 논의에 붙이더니 “사용자들 반대가 심하다”며 못하겠다며 배신을 때렸다. 실직자·구직자 노조 할 권리 보장을 공약해놓고 기간제교사노조 설립신고를 무려 2차례나 반려시켰다. 노조 할 권리 보장이 아니라 멀쩡한 노동자들까지 노조 못 하게 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선 공약이기도 했고 국제사회의 요구이기도 한 ILO 핵심협약 비준은 어떤가? 대통령이 국무회의 열어 비준 의결하면 될 것을 굳이 자본가들이 포함된 경사노위 논의에 붙였다. 사회적 대화에 붙일 거였다면 뭣하러 공약으로 내걸었단 말인가. 당연히 자본가들은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았고, 오히려 ILO 협약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노동개악 입법안을 내놓았다.

만일 이 입법안을 밀어붙인다면 이는 1996년에 이어 제2의 노동법 날치기 정국이 형성될 것이다. 최저임금 1만원 약속 파기도 모자라 식대·교통비·상여금 등 거의 모든 임금을 최저임금에 포함시켜서 최저임금이 아무리 올라도 내 월급봉투는 변하지 않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최저임금제도 자체가 너무 망가져 버려서 이제는 뭐가 최저임금법 위반인지 알 수조차 없게 만들었다.

2년 남짓한 임기 동안 범죄자 이재용을 9번이나 만나줬고,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의 공범인 전경련을 되살려 주고 있는 등 문재인 정부 국정철학은 ‘노동 존중’이 아니라 ‘재벌 존중’이다. 박근혜는 재벌 회장들을 몰래 만났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대놓고 만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문재인과 조국을 지키기 위해 노동자들이 서초동 촛불에 와야 한다고?

 

노동자 설득 못하는 검찰개혁이 실효성 있나

검찰청과 법원이 위치한 서초역은 한국 노동운동과 뗄 수 없는 인연을 갖고 있다. 수많은 민주노조운동 지도자와 투사들이 포승줄에 묶여 이곳에 끌려왔다. 노동운동 탄압을 중단하라고, 억울한 구속자를 석방하라고, 노동탄압을 자행하는 자본가들을 구속하라고, 우리 노동자들이 지금까지 셀 수 없는 기자회견과 집회, 노숙농성을 벌여온 공간이다.

2004년 초에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진정서를 내 손으로 직접 작성했고, 그해 연말에 노동부로부터 울산·아산·전주공장 1만명 사내하청 전원 불법파견 판정을 받아냈다. 그 후 대법원의 현대차 불법파견 판결을 몇 번이나 받아냈건만,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검찰은 정몽구 회장을 비롯한 현대차 자본가들을 파견법 위반으로 기소조차 하지 않고 있다.

그래, 현행 기소독점권과 기소편의주의를 폐지하는 것은 노동자들에게도 깊은 이해관계가 있다. 하지만 지금 문재인 정부는 어떠한가? 아사히글라스·한국GM·파리바게뜨 등에 불법파견 판정을 내리고도 과태료 처분만 했을 뿐 검찰 기소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자본가들은 간단히 과태료 처분에 불복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함으로써 과태료조차 내지 않는다.

최근 이례적으로 기아차 불법파견에 대한 검찰 기소가 이뤄졌는데, 법원이 불법파견으로 인정한 내용의 절반만 기소해 오히려 재벌에게 면죄부를 주고 말았다. 이렇듯 기소편의주의가 노동자 권리를 짓밟고 있음에도 노동자들은 문재인과 조국의 검찰개혁 약속에 호응하지 않는다. 공수처를 신설하고, 직접수사를 축소하는 개혁이 이뤄진들 노동자들 삶은 뭐가 나아진단 말인가.

지난 8월 29일 대법원은 톨게이트 수납노동자 300여명이 그동안 불법파견으로 사용되어 왔으며, 따라서 도로공사 정규직의 지위에 있음을 판결했다. 현재 1, 2심에 계류 중인 1,500명 노동자들에 대한 직접고용이 정당하다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대법원이 대규모 불법파견을 판결했음에도 이강래 사장에 대한 파견법 위반 혐의 조사와 수사는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

그러는 가운데 청와대 이호승 경제수석이란 자는 “톨게이트 수납원이 없어지는 직업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느냐”며 해고된 톨게이트 수납노동자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린다. “그래, 없어지는 직업이라서 자회사로 몰아넣었구나. 한꺼번에 몰살시키려고!” 대법원도 불법이라는데 오히려 노동자만 해고되는 사태를 겪은 노동자들이다. 이강래가 구속되고 직접고용 시정이 이뤄지지 않는 한, 문재인 정부가 주장하는 검찰개혁에 대체 어떤 노동자들이 호응하겠는가.

검찰이 가진 무소불위의 권한 일부를 경찰에게 이양하면 견제와 균형이 이뤄진다고? 박근혜에 맞서 온갖 희생을 무릅쓰고 전개했던 민주노총의 2015년 총궐기에 대해, 내란죄나 다름없는 ‘소요죄’를 적용하려 했던 것은 검찰이 아니라 경찰이었다. 무리한 법 적용이라며 소요죄 적용을 포기한 쪽이 검찰이었고 말이다. 검찰이든 경찰이든 노동운동 때려잡는 데에는 한마음 한뜻인데, 어느 쪽이 권력을 더 갖느냐가 대체 노동자들 삶에 무슨 변화를 가져다준단 말인가.

故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 이후로도 작업장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의 죽음이 이어지고 있다. 작년과 올해 공사장 엘리베이터 사망사고만 5번 반복되었다. 위험한 작업은 모조리 외주화 되었고, 작업을 맡긴 원청 사업주는 모든 책임을 면한다. 문재인 정부는 추락사고를 절반으로 줄이겠다, 산재 사망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이겠다고 약속했지만 사고 빈도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있다. 노동 관련 사건에서 근로감독관은 ‘사법경찰관’의 지위를 갖는다. 경험 많은 근로감독관들로 ‘중대재해 기업범죄 특별수사대’를 꾸리고, 노동법에 밝은 검사들을 파견해 사망사고가 벌어지는 사업장에 대한 즉각적인 압수수색과 강제수사를 벌이고, 노동자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 기업주 모두를 엄벌한다면 사망사고는 당장 절반 밑으로 줄어들 것이다. 이런 최소한의 개혁 약속이 없는데 진정성을 믿어줄 노동자들이 있을까?

같은 원리로 ‘근로기준법 위반 수사대’ ‘최저임금 지킴이 점검반’을 운영하는 방안도 있다. ILO 협약의 취지에 맞도록 현장에서 벌어지는 사용자들의 온갖 불법·부당행위 근절을 위해 ‘부당노동행위 특별수사대’를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근로감독관들 전체를 모아 ‘근로감독청’을 독립시키는 길도 있다.

불법파견 범죄 자행한 사용자 때려잡고 피해 노동자 직접고용 만들어내는 검찰개혁이라면, 우리 노동자들에게 가지 말라고 해도 촛불집회 나간다. 근로기준법·최저임금법 위반하는 놈들, 부당노동행위 자행하는 파렴치범들 일벌백계 하는 검찰개혁이라면 모두들 촛불집회에 동참할 것이다.

이제 반대로 되묻고 싶다. 검찰개혁을 염원하는 서초동 촛불시민들은 어째서 불법파견 범죄자에 맞서 싸우는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투쟁현장에는 오지 않는가. 기소편의주의 철폐하자고 주장하는 시민들은 어째서 검찰의 불법파견 불기소에 맞서 15년째 투쟁하고 있는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손을 잡아주지 않는가. 이 의문이 해소되지 않는 한 노동자들은 서초행 지하철이 아니라 도로공사가 위치한 김천행 열차를 탈 수밖에 없다.

 

필자 오민규는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노동자운동연구공동체 뿌리 연구위원을 역임중이다.

*이 글은 14일 조국 장관 사퇴 이전에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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