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측 시설 들어내라"는 김정은, '결단의 시간' 임박했다

  • 기자명 김준일 기자
  • 기사승인 2019.10.24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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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3일 금강산 관광지구를 방문해 “너절한 남측시설을 싹 들어내고 금강산 자연경관에 어울리는 현대적 봉사시설들을 우리식으로 새로 건설하여야 한다”고 지시했습니다. 이어서 “선임자들의 의존정책이 잘못되었다. 우리의 명산인 금강산에 대한 관광사업을 남측을 내세워서 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김 위원장 발언이 국내에 알려지면서 정치권은 유감을 표시했고 특히 야당은 정부의 대북정책이 사실상 실패한 것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금강산 남측시설 철거 지시한 김정은>, 이 뉴스의 행간을 살펴보겠습니다.

 

1. "나는 선대와 다르다"

김정은 위원장 발언에서 눈여겨 볼 것은 ‘선임자’들의 잘못을 비판했다는 겁니다. 김 위원장은 “손쉽게 관광지나 내어주고 앉아서 득을 보려고 했던 선임자들의 잘못된 정책”이라고 말을했습니다. 여기서 선임자는 선대인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북한은 위대한 수령, 영도자 등의 표현을 쓰며, 최고 존엄 지도자를 가리켜 선임자라고 지칭하지 않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아버지 김정일 정권때의 경제정책 담당자를 비판한 겁니다.

하지만 부친과 할아버지가 거의 신격화된 상황에서 부친의 정책을 비판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상황입니다. 부친 김정일은 '은둔의 지도자'라고 불렸을 정도로 대중 노출을 꺼렸고, 발언 하나, 정책 하나에도 신중했습니다. 반면 해외에서 유학한 김정은 위원장은 서슴치 않고 인민들과 스킨십을 하고, 핵을 포기한 뒤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려 하는 등 개방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날 발언은 선대의 정책이라도 잘못된 것은 과감하게 비판하겠다는, 실용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2. 관광벨트 '원대한 꿈'

김정은 위원장의 꿈은 단순히 금강산 관공을 복원하겠다는 수준이 아닙니다. 현재 북한은 원산갈마지구에 대규모 관광시설을 짓고 있습니다.  원산갈마지구엔 해안선을 따라 대규모 건물이 쭉 늘어선 상태입니다. 5성급 호텔만 4개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북한이 경제제재를 받고 있지만 시멘트는 국내에서 생산하기 때문에 골조는 올릴 수 있습니다. 다만 내부 인테리어는 대북제재 품목이기 때문에 진척이 안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금강산에서 남측 시설을 걷어내고 대규모 관광시설을 짓겠다고 밝힌 겁니다. 실제 11년간이나 관광이 중단되어 시설이 낡은 것도 사실이고, 일부 시설은 철거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관광산업을 국가의 중요 정책 중 하나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겁니다.  금강산-원산갈미지구-마식령스키장으로 이어지는 구간을 관광벨트화해서 해외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김정은표 관광경제’의 일환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 의견입니다. 그래서 김정은 위원장은 “남녘동포들 오겠다면 언제든 환영한다”고 말했습니다. 남한에서 가지 않으면 이 관광지구의 수지타산이 맞을 수가 없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여지를 남기는 북한식 우호 발언으로 해석됩니다.  다만 한국 국민 입장에서는 한국기업이 지은 건물이 "너절하다"고 비판했다가, "한국국민을 환영한다"고 말하는 것이 굉장히 이상해 보이는 건 사실입니다.

 

3. '결단의 시간'이 다가온다

김 위원장 발언은 다방면의 포석입니다. 내부적으로 외세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남한에는 주체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을, 미국에는 제재 해제와 협상을 요구한 겁니다. 최근 김 위원장은 백마를 타고 백두산을 방문해 결단의 시간이 다가왔음을 암시했습니다.  앞으로 있을 북미협상에서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겠다는 겁니다.

10월 5일 스톡홀름에서 열린 북미 실무협상은 8시간만에 결렬이 됐지만 반드시 비관적으로 볼 일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의 의견입니다. 올해 2월에 열린 베트남 하노이 2차 정상회담 이후 7개월만의 협상이었는데 8시간동안 협의를 했습니다. 진지하게 양측의 카드가 테이블에 올라와 논의가 됐다는 것이고, 서로 가격이 안맞아 협상을 중단한 겁니다. 현재까지 외신에 알려진 미국측의 소위 ‘창조적인 제안’은 북한의 석탄과 섬유의 수출금지를 유보하고, 석유 수입도 용인해주는 거였습니다. 대신 핵무기 핵물질 인도 약속과 영변 핵시설을 완전히 폐기하고 우라늄 농축활동을 중단하는 '영변 플러스 알파'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으로서는 체제안전보장까지 받아내려 했기 때문에 '값이 안 맞아'는 판을 깼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김정은은 경제 위기로, 트럼프는 탄핵 위기로 절박한 상황에 몰려 있습니다. 둘 다 빠른 시간 내에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입니다. 결국 올해가 가기 전에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도 “연말까지 북미관계에 한 두 차례 중요한 계기가 올 것”이라고 민주당 비공개 정책간담회에서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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