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가슴살ㆍ소고기ㆍ버거패티 절대로 구워먹지 말라고?

  • 기자명 김준일 기자
  • 기사승인 2017.10.09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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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1일 네이버다음 등 주요 포털에 '닭가슴살ㆍ소고기ㆍ버거패티...절대로 구워먹으면 안돼요'란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다. 헤럴드경제에서 작성한 이 기사에는 댓글이 1300개 붙으며 사람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그런데 기사 제목이 과하게 자극적이다. 고기를 절대로 구워먹으면 안되는 것일까? 뉴스톱에서 이 기사를 팩트체크했다.

1. '책임있는 의사회'는 미국의 의사 단체?

헤럴드경제는 부제목으로 '美의사회‘발암위험 음식5’발표'라고 적었다. 기사에 따르면 이 내용을 발표한 곳은 미국의 ‘책임 있는 의사회(PCRM: Physicians Committee for Responsible Medicine)’다. 우선 책임 있는 의사회가 어떤 단체인지 살펴보자.

<액티비스트팩트>라는 사이트가 있다. 미국의 다양한 단체와 활동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곳이다. 액티비스트팩트 평가에 따르면 책임있는 의사회는 "양의 탈을 쓴 늑대"다. 본래 극단적인 동물보호 단체로 달걀, 우유, 육류, 해산물을 미국인 식단에서 없애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연의 목적을 위장해 미디어에서는 권위있는 단체로 활동하고 있다.

액티비스트팩트에서 밝힌 책임있는 의사회의 성격. 회원 중 의사는 5% 미만이다.

2004년 2월 22일자 뉴스위크 기사에 따르면 전체 회원 중 의사는 5% 미만이다. 회원 중 95%는 의사 면허가 없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라는 타이틀을 단체 이름에 명기해 놓음으로서 미국을 대표하는 의사단체인 것처럼 활동한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채식주의를 홍보하고 동물실험을 반대한는 단체로 알려져 있다. 건강 사기에 반대하는 국가 이사회(National Council Against Health Fraud)라는 단체는 책임있는 의사회를 "본인의 이념을 감추고 기자회견장에서 허풍을 떠는 프로파간다 기계"라고 묘사했다.

액티비스트팩트와 비슷한 활동을 하는 소스워치는 책임있는 의사회의 활동에 대해 기술해놨다. 미국의 육식 위주 식습관 개선, 의학 연구윤리 지적, 영양과 식단에 대한 연구 등이 주요활동이라고 적어놨다. 미국 의학계와 관련 산업계에서는 책임있는 의사회 반대 캠페인(Anti-PCRM campaigns)을 벌이고 있다. 미 의학계를 대표하는 미국의학협회(American Medical AssociationㆍAMA)는 책임있는 의사회를 비주류 단체(fringe organization)며, 목적 달성을 위해 비윤리적 전술을 사용한다고 비판했다. PETA라는 세계적 동물보호협회가 책임있는 의사회의 주요 후원자다. 

종합하면, 책임있는 의사회는 육식 감소와 채식 홍보를 위한 목적이 뚜렷한 단체로, 의사로만 구성된 단체는 아니다. 미국에서도 이 단체의 성격과 활동에 대해 논쟁이 있는 상황이다.

2. 불에 고기 구워먹으면 암 걸린다?

그러면 책임있는 의사회의 발표가 사실인지 살펴보자. 헤럴드 경제 기사가 참고한 원문은 'The Worst Foods to Grill'이라는 칼럼으로 7월 4일 독립기념일을 앞두고 홈페이지에 게재됐다. 많은 미국인들이 휴일을 맞아 야외 바베큐를 즐기는데 직화구이가 발암물질을 생성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글의 내용은 헤럴드경제가 소개한 내용과 같다. 고기를 불에 직접 구우면 헤레토사이클릭아민류(HCAs)라는 발암물질이 생성되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것이다. 해당 칼럼은 17개의 연구 참고문헌을 달아놨다.

그런데 이 칼럼은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책임있는 의사회는 2005년에도 동일한 제목(The Five Worst Foods to Grill: 2005)의 글을 홈페이지 올렸다. 내용은 대동소이하며 참고문헌 역시 대부분 겹친다. 즉, 과거 연구 결과를 재탕해서 최신 연구인 것처럼 글을 올린 것이다. 

헤럴드경제가 인용한 책임있는 의사회 칼럼. 2005년 칼럼과 내용이 거의 똑같다.

그러면 직화구이가 발암물질을 생성하는 것은 사실일까? 이는 사실로 여겨진다. 많은 논문과 기사는 비슷한 내용을 전하고 있다. 2015년 11월 타임 기사, 2013년 6월 bon appetit 기사, 2014년 1월 Slate 기사, 2017년 1월 시카고트리뷴 기사까지 미국언론들은 이 같은 사실을 전하고 있다.

국내에도 유사한 연구가 수차례 소개됐다. 2006년에는 소고기 패티가 유방암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연구가 소개됐고  2016년 4월에는 생선을 불에 굽는 것이 소고기보다 건강에 나쁘다는 연구가 소개됐다. 즉, 고온의 불에 직접 굽는 고기가 발암 물질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직화구이가 도대체 얼마나 위험하느냐다. 헤럴드 경제는 책임있는 의사회를 인용해 "HCA는 소량으로 섭취하더라도 암을 일으킬 수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 불에 구운 고기를 조금만 먹어도 암에 걸린다는 의미일까. 

가장 최근 기사인 시카고트리뷴 보도를 참고하자. 세계보건기구 산하의 국제 암연구 기관의 2015년 분석에 따르면 훈제고기 (핫도그, 소고기 육포, 베이컨, 햄 등)를 매일 먹는 사람은 18% 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 전 세계적으로 과도한 훈제고기 섭취로 3만4000명이 사망한다. 반면 알코올 섭취로는 60만명이 사망했고 공기 오염으로 20만명이 사망했다. 고기보다는 술이 훨씬 위험한 물질이다. 전문가들은 규칙적으로 10년 이상 직화구이 육류를 섭취했을 때 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고 했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큰 문제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3. 건강 기사는 팩트만큼 '맥락'도 중요하다.

헤럴드 경제는 왜 이 기사를 보도했을까? 책임있는 의사회는 책임있는 의사들의 모임도 아니고, 이 칼럼 역시 12년 전에 나왔던 내용을 재탕한 것이다. 추론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한가지 '클릭장사'다. 사람들은 건강 정보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조금만 눈에 띄는 제목으로 포털에 게재를 하면 클릭수가 크게 올라간다.

센불에 구워 탄 고기가 발암물질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인간이 얼마나 섭취해야 암에 걸리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이 기사를 작성한 사람은 리얼푸드 고승희 기자다. 리얼푸드는 헤럴드경제의 자회사로 추정된다. 리얼푸드의 최초 제목은 '의사들이 말하는 절대로 구워 먹으면 안되는 음식'(9월 7일자)다. 이틀 뒤 동일한 기사는 헤럴드경제 홈페이지에 실리면서 주요 포털에 올라갔고 제목도 '닭가슴살·소고기·버거패티…절대로 구워먹으면 안돼요'로 바뀌었다. 훨씬 자극적이다. 결과적으로 댓글이 1300개가 달렸으니 장사에 성공했다. 그런데 댓글이 대부분 냉소적이다. "그냥 고기 먹고 죽겠다"는 내용이 베스트 댓글이다. 무분별한 의학기사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의학 기사는 신중해야 한다. 한 해에도 새로운 의학 연구가 수천개씩 쏟아진다. 외신에서도 수없이 많은 의학 기사가 나온다. 어떤 것을 보도하느냐는 기자의 선택이지만, 최소한 지켜야할 선이 있다. 어떤 맥락에서 이 기사가 나왔고 과거 연구과 비교해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밝혀줘야 한다. 또 위해성이 있다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밝혀주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야 소비자들이 잘못된 의학 상식으로 오판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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