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대법원장 잘못 뽑으면 베네수엘라처럼 망해”

  • 기자명 송영훈 기자
  • 기사승인 2017.09.20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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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장 잘못 뽑으면 베네수엘라처럼 망한다”
-강효상 자유한국당 대변인, 2017년 9월 18일 논평

 

 

자유한국당 강효상 대변인은 18일 오후 논평을 통해 "사법부가 특정 정치세력과 결탁하면 나라를 송두리째 망하게 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 예로 든 것이 베네수엘라였다. 강 의원의 주장은 베네수엘라가 망하게 된 것은 잘못 인선된 대법원장 때문이라는 것이다. 뉴스톱이 자유한국당의 주장을 팩트체크했다. 

자유한국당에서 베네수엘라 비유가 처음 나온 것은 이날 오전에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였다. 이종혁 최고위원은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권이 집권하는 동안 4만5000여 건의 대법원 판결이 있었는데, 단 한 건도 정부에 거슬리는 판결을 내놓지 않았다”며 “사법부 장악이 베네수엘라 몰락의 주요 원인이 됐다”고 주장했다.

홍준표 대표도 “베네수엘라 대법관 관련 발언은 최근 우리당에서 나온 발언 중 최고”라고 극찬하며, “김명수 대법원장을 시키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사례가 바로 베네수엘라 대법관 사례다. 만약 사실이라면 김명수 대법관 문제는 아주 심각하고도 심각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후 자유한국당의 공식 논평이 나왔다.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결국 이런 이념화된 대법관의 판결들은 베네수엘라를 혼란에 몰아넣었다. 사법부를 장악한 독재의 전횡은 남미의 부국이었던 베네수엘라를 굶주림과 범죄가 심각한 나라로 만들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대법원장 한 명 잘못 뽑으면 베네수엘라처럼 망할 수 있다. 잠깐의 공백이 무섭다고 사법부 이념화로 몰락한 베네수엘라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베네수엘라 위기 주요 원인은 유가하락

그러면 정말 베네수엘라의 위기 원인은 대법원일까? 그런데 대부분의 언론은 ‘유가 하락’을 주원인으로 꼽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수출의 96%를 원유에 의존하고 있다.

우선 유가추이를 살펴보자. 2013년 3월 5일 우고 차베스 대통령 사망 이후 부통령이던 니콜라스 마두로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국제 유가는 2014년부터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하락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셰일가스가 본격적으로 생산되면서부터다. 2014년 8월 배럴당 101.9달러였던 두바이유 가격은 2015년 1월 45.8달러로 반토막났다. 2016년 1월 26.9달러까지 폭락했던 석유가격은 2017년 7월 현재 배럴당 47.6달러다. 별다른 기반 산업이 없이 원유판매로 먹고 살았던 베네수엘라에게 치명타였다. 

국제 유가하락이 베네수엘라 경제에 치명적이었다는 사실은 진보ㆍ보수 나눌 것 없이 모든 언론에서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원인이다. 

“재원을 대부분 석유산업에 의존했던 것이 결정적 화근이었다. 베네수엘라는 GDP의 40%가 석유에서 나오는데 차베스 사망 이듬해인 2014년 이후 저유가 시대가 계속되자 차베스주의는 난관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다" (중앙일보
“문제는 유가 하락이었다. 한때 배럴당 100달러가 넘던 유가는 최근 들어 20달러대까지 떨어졌다. 사실 차베스 정부 때도 인플레이션과 잦은 물자 부족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 ‘차베스 없는 베네수엘라’에 유가 하락 폭탄이 떨어졌고, 결국 물가는 치솟고 식량난도 겹쳤다” (시사인
"2014년 유가 급락 이후 원유수출 의존도가 높은 베네수엘라는 정치, 경제적 상황이 크게 악화됐다. 이런 영향으로 베네수엘라 경제는 2014년 –3.9%를 시작으로 2015년 -6.2%, 2016년 -18.0% 등 3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고 실업률도 2016년 21.2%로 급등했다” (뉴시스)
“베네수엘라 위기는 일차적으로 국제 유가 하락에 있다. 베네수엘라 수출의 95%는 석유여서다. 세계 석유 매장량 1위인 베네수엘라는 매장량의 60%는 채굴 비용이 많이 들고 채산성이 낮은 중질유이다. 때문에 유가 하락의 직격탄을 맞았다”  (연합뉴스

 

 

정부의 경제개혁 실패도 한 몫

1998년 선출된 차베스 정부는 국영석유공사(PDVSA)에서 나오는 재원으로 무상복지, 일자리정책 등 각종 사회개혁 프로그램을 실현하며 석유수입을 빈민층과 나눴다. 그 결과 베네수엘라의 빈곤율이 크게 줄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03년 62.1%였던 빈곤율이 2007년 33.6%로 줄었고 2011년 31.9%로 안정화했다. 1인당 국민총소득도 2003년 3482달러(약 394만원)에서 2011년 1만 2000달러로 증가했고 폭넓은 정치적 지지층을 만들어냈다.

문제는 오일머니가 풍부한 차베스 대통령 시절에 경제 체질개선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국과의 외교적 긴장관계 속에서 펼쳐진 일종의 쇄국정책은 국가 경제의 발목을 잡았다. 외교부 베네수엘라대사관에 따르면 2003년 차베스 2기 정권에서 외환보유고 확보를 위해 외환거래를 전면 금지시키는 등 국가에 의한 엄격한 외환거래 통제와 가격통제는 경제성장의 장벽으로 나타났다. 

근로자들의 임금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 재정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던 차베스의 정책은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데는 도움이 됐지만, 유가 하락으로 재정 수입이 축소되자 국가 경제의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수입은 급감했으나, 지출은 지속됐고, 국가재정은 악화됐다.

2013년 사망한 차베스의 뒤를 이어 선출된 마두로 대통령의 베네수엘라는 2014년부터 시작된 저유가 시대로 직격탄을 맞았다. 집권 당시부터 50.6%의 득표율, 1.5% 안팎의 아슬아슬한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됐던 마두로 대통령은 2016년 새 지폐 발행과 관련해 갈팡질팡하는 모습으로 ‘화폐대란’을 불러오는 등 폭발적인 인플레이션과 환율통제에 실패하며 국가 위기를 악화시켰다. 

 

부정부패와 포퓰리즘도 원인으로 지목

차베스 이전부터 현 정부까지 끊이지 않는 부정부패도 국가위기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조사한 2016년 부패인식지수(CPI)에서 베네수엘라는 100점 만점에 17점으로 176개국 가운데 166번째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53점으로 52위를 기록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사회복지를 위한 정부의 각종 보조금과 지원금 등 과도한 복지제도에서 비롯된 포퓰리즘을 지적하기도 한다. 또 미국의 지속적인 제재 및 트럼프 대통령의 추가 제재가 베네수엘라 경제를 더 악화시켰단 지적도 나온다. 과거 차베스 대통령은 미국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높은 유가 덕에 버틸 수 있었지만 현재는 베네수엘라 경제 시스템이 사실상 붕괴한 상태여서 미국의 제재가 치명타가 되고 있다. 

결국 베네수엘라의 경제위기의 원인은 ‘원유생산에 집중되어 있는 경제시스템이 국제 유가가 높던 시절에는 그 수익을 사회복지에 대거 지출하며 유지해 갔지만, 유가 하락이 가져온 경제 위기에 마두로 정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뉴스톱의 판단

거짓. 강 대변인이 언급한 4월 28일자 워싱턴포스트 기사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대법원은 정부와 결탁해 10년 넘게 차베스의 뜻에 반대되는 판결을 내린 적이 없다. 또 최근엔 베네수엘라 대법원은 야권이 장악한 의회를 해산시킨 뒤 스스로 입법권을 대행하겠다는 판결을 내리고, 야권이 추진한 마두로 대통령의 국민소환 투표를 반대해 사실상 무산시키는 등 대통령을 지지하는 판결을 내려왔다. 

그러나 현재 베네수엘라의 위기에 대법원이 일조를 했을 수는 있지만 주원인은 아니다. ‘정권의 시녀’가 된 사법부는 독재국가나 정치후진국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말 그대로 독재자 혹은 독재정부의 ‘시녀’ 역할을 할 뿐 사법부나 대법원, 대법원장이 국가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베네수엘라가 사실상 망하게 된 원인은 일차적으로는 급격한 유가하락이 원인이고, 잘못된 경제정책과 개혁 실패, 국가 부패 및 미국 경제 제재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가장 중요한 것은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가 과거 정권과 결탁했다는, 그리고 앞으로 결탁할 것이라는 증거가 없다. 김 후보자가 단순히 진보적이라는 이유만으로 한국의 대법원장이 베네수엘라 대법원장처럼 될 것이라고 연결짓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종합적으로 판단해, 뉴스톱은 자유한국당의 주장을 거짓으로 판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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