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자유시장경제는 악’, ‘사회적경제는 선’인 교과서?

  • 기자명 송영훈 기자
  • 기사승인 2017.10.26 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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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이 제작한 교과서가 ‘자유시장경제를 악으로, 사회적경제는 선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뉴스톱에서 확인했다.

 

YTN 뉴스 화면 캡처

지난 10월 17일 국회에서 열린 서울시 국정감사에서 자유한국당 장제원 의원은, "서울시에서 1억 9000만원 예산을 들여서 <사회적경제> 교과서를 만들었다. 이런 교과서를 만들어서 초·중·고에 배포하는 것은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집요하고 교묘하게 박원순 서울시장이나 조희연 서울교육감이 생각하는 경제관을 주입하려는 것이다”며, “이 교과서는 시장경제를 악으로, 사회적 경제를 선으로 표현하고 있다. 왜 관이 나서서 시장경제관이 정립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편향적 교육을 하는 교과서를 만드나, 이런 걸 출판계와 학계에 맡기지 않고 관이 나서나. 사회주의 경제 신봉자로 만드는 박원순 시장을 고발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같은 날 저녁 장 의원은 본인의 페이스북에 <사회적경제> 교과서 21페이지에 실린 만화와 함께, “아래 만화처럼 왼쪽은 자유시장경제를 그리면서 아주 악한 사람으로 표현합니다. 오른쪽은 사회적경제를 그리면서 아주 착한 사람으로 표현합니다”, “아직도 자신의 경제관이 스스로 정립되지 않은 우리 중학생들이 이 만화를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요?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생길 겁니다.“라는 내용의 게시물을 게재했다.

중학교 인정교과서로 채택

<사회적경제> 교과서는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 서울시의회가 제작해 지난해 2학기부터 초중고에 배포하기 시작했다. 관련 교과 수업과 연계한 보조자료나 ‘인정 교과서’로 사용되고 있다.

인정교과서(인정도서)는 국정도서·검정도서가 없는 경우 또는 이를 사용하기 곤란하거나 보충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사용하기 위하여 교육부장관의 인정을 받은 교과용도서를 말한다.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 2조) 현재 국내 중학교 교과과정에는 <경제>과목이 없기 때문에 검정교과서는 없고 인정교과서만 있다.

장 의원의 주장이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한국경제와 매일경제가 장 의원의 주장과 유사한 내용을 지난 해 4월 ‘‘시장경제’ 가르치는 교과서도 없는데…‘사회적 경제’ 먼저 배우는 서울 학생들’, 10월 ‘반기업정서 주입식교육하는 진보교육감’ 등의 제목으로 각각 보도한 바 있다.

장 의원이 예로 든 만화도 이번 <사회적경제> 교과서에 처음 사용된 것이 아니다. 2013년 10월 13일 구로사회적경제특화사업단이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새로운사회를위한연구원과 함께 개발한 <청소년 사회적경제 알기-사회적경제 참 좋다!>는 만화 교재에 실린 내용이다.

이 책 첫 단원인 ‘사회적경제는 무엇인가’에서 ‘모두가 오래오래 고등어를 잡으려면’이라는 질문에 대한 설명으로 9~13쪽에 실려 있다. 같은 내용으로 ‘사회적경제 참좋다-두가지 선택’이라는 제목의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어 유튜브에 공개되어 있다.

한 어촌마을에서 어부들이 고등어를 서로 많이 잡으려다 결국 씨가 마르는 위기에 처했으나 의견을 모아 일정 기간 잡을 수 있는 쿼터를 정해 남획을 자제한 결과 위기를 막을 수 있었다며 ‘사회적 경제’의 중요성을 만화를 곁들여 설명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장 의원의 주장처럼 이 만화가 ‘악한 이미지의 자유시장경제’와 ‘착한 이미지의 사회적경제’를 그리고 있다는 근거는 아무 곳에도 없다. 만화에 이어 ‘첫 번째 선택과 두 번째 선택을 비교’해보는 ‘생각해보기’가 있고, 이어서 ‘한 해에 잡을 수 있는 고등어 양은 정해져 있어요!’라는 제목과 함께 ‘총허용어획량제’를 설명하고 있다.

문제 삼은 <사회적경제>교과서에서도 마찬가지다. ‘사회적경제의 필요성’이라는 제목으로 5쪽 가운데 1쪽과 4쪽을 보여주고 각 선택에 대한 의견을 묻고 있다.

 

'공유지의 비극' 이론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만화가 조선일보에도 실린 ‘공유지의 비극’에 대한 설명이라며, 2009년 미국의 엘리너 오스트롬 교수가 메인주에서 남획으로 씨가 말라가는 바닷가재 어업을 어부들이 자체 보호조치를 취해 위기에서 벗어난 사례로 해법을 제시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공유지의 비극’은 1968년 생물학자 개럿 하딘이 <사이언스>에 발표한 이론으로 공유지에 마을사람들이 가축을 방목할 때, 개개인의 자제할 수 없는 욕심으로 전체적인 파국을 맞는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엘리너 오스트롬 교수는 공유지의 비극에 대해 국가 대신 시민사회공동체의 자체적 해결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자유시장경제의 문제점을 시민사회공동체가 보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과서의 전체적인 내용에서도 자유시장경제를 부정하는 내용은 찾을 수 없다. 첫 단원인 11쪽에서 “시장경제를 통해 개인은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하면서 능력에 따라 물질적인 만족과 혜택을 누리게 됩니다.”고 정리하고 있으며, ‘사회적경제의 필요성’이란 항목에서는 ‘시장경제는 사회의 소외 계층이나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기보다는 구성원 간에 서로 협동하여 개인의 이익과 공동의 이익을 함께 추구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사회적경제를 자유시장경제의 대체가 아닌 보완책으로 다루고 있는 셈이다.

교사용 지도서에도 ‘시장경제와 사회적경제가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함으로써 경제적 효율성과 형평성의 증대에 기여할 수 있음을 이해하고 경제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함양하도록 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국내의 사회적경제 정책은 1996년 보건복지부에서 전국 5개 지역 자활센터를 시범 운영하며 시작돼, 1998년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생활협동조합’ 인가, 2003년 노동부 ‘사회적기업’ 육성 등으로 이어졌으며,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 제정, 2010년 마을기업 육성 사업, 2012년부터는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돼 협동조합이 설립되고 있다.

낙후된 지역이나 빈부격차, 불완전 고용 등을 보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지자체마다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고, 현 정부에서는 고용창출과 양극화 해결의 한 방편으로 사회적 경제 활성화를 추진 중이다.

 

뉴스톱의 판단

거짓 장제원 의원의 주장처럼 삽화가 ‘부정적’, ‘긍정적’을 대비해 그리고 있지만, 그것이 자유시장경제를 부정하거나 악으로 표현한다고는 볼 수 없으며, 교과서의 다른 곳에서도 자유시장경제를 악으로 보는 내용은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장 의원의 "자유시장경제는 악으로, 사회적경제는 선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주장은 거짓으로 판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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