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는 왜 '로봇세'를 주장하나?

  • 기자명 강양구 기자
  • 기사승인 2017.05.23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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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9일 ‘장미 대선’을 앞두고 유력 대선 후보들이 날을 세우고 있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안희정 충남도지사,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 등이 한목소리로 중요하다고 입을 모으는 내용이 있다. 바로 ‘4차 산업 혁명’이다. 혁명?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변한다는 얘기일까.  

사실 4차 산업 혁명은 그 실체가 무엇인지 모호하다. 장담컨대, 문 전 대표나 안 전 대표에게 4차 산업 혁명을 쉽게 설명해 달라고 부탁해도 제대로 답하지 못할 개연성이 높다. 왜냐하면 또렷하게 합의된 정의가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널리 통용되는 것이 클라우스 슈바프(Klaus Schwab) 세계경제포럼 회장의 정의다.  

2016년 1월 슈바프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4차 산업 혁명을 중요한 논의 과제로 제시해 이 말을 전 세계적 유행어로 만들었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소추안 국회 통과로 집무가 정지되자마자 읽었다던 책 <제4차 산업 혁명>(새로운현재)의 저자이기도 하다. 일단, 그의 정의부터 살펴보자.  

로봇이 못하는 인간의 일

슈바프에 따르면 지금까지 증기기관의 1차 산업 혁명, 전기와 대량 생산의 2차 산업 혁명, 정보 기술(IT)과 자동화의 3차 산업 혁명이 있었다. 지금 우리는 인공지능(AI), 생명공학, 3D 프린팅 기술이 초래한 또 다른 변화를 맞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4차 산업 혁명이다.  

대통령을 꿈꾸는 정치인은 너나없이 ‘우리도 열심히 해서 4차 산업 혁명에 뒤처져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그런데 보통 사람 처지에서는 4차 산업 혁명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내 삶을 어떻게 바꿀지가 중요하다. 바로 이 대목에서 4차 산업 혁명은 재앙이 될 수 있다. 일자리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과학자나 공학자 상당수는 자율 주행 자동차의 등장이 시간문제라고 여긴다. 2020년, 그러니까 앞으로 3년 정도면 아내가 출근길에 이용한 자동차를 다른 곳에서 일하는 남편이 소환(summon)해 몰고 다니는 일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 운전자 없는 자동차를 사회가 수용하는 데는 시간이 좀 더 걸리겠지만, 생각보다 빨리 자율 주행 자동차가 우리 일상생활 속으로 들어올 수 있다.

이렇게 자율 주행 자동차가 대세가 되면 당장 버스나 택시 같은 대중교통수단의 운전기사를 인공지능이 대신할 가능성이 높다. 안전 문제만 놓고 봐도 그렇다. ‘구글’ 등이 축적한 자율 주행 자동차의 주행 데이터를 보면 에어백이 터질 만큼 큰 사고가 발생할 확률은 인공지능이 운전하는 경우가 졸음운전이나 난폭 운전을 하는 사람보다 훨씬 낮았다.

자율 주행 자동차가 가져올 더 큰 파장 가운데 하나는 자동차 산업의 구조 조정이다. 자율 주행 자동차가 대세가 되면 자동차 수요는 어떻게 될까. 하루 종일 주차장에 서 있는 수많은 자동차가 말 그대로 ‘자율 주행’을 하게 되면 자동차 한 대를 여럿이 공유할 것이다.

실제로 전문가 다수는 자율 주행 자동차가 자동차 산업의 위축을 가져오리라 전망한다. 그럼 자동차 제조 업체에 고용된 많은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게 된다. 아니, 이미 그 전에 상당수가 공장에서 쫓겨날 것이다. 실제로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이뤄지는 상당수 작업이 로봇으로 대체됐고, 그 규모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면 4차 산업 혁명은 대량 실업 재앙의 다른 말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낙관론을 되뇌는 이들이 있다. 4차 산업 혁명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테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 물론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 누군가는 득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일하던 공장에서 쫓겨난 사람에게 그런 새로운 일자리가 곧바로 들어올 개연성은 낮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4차 산업 혁명이 새롭게 만들 일자리의 질도 그다지 높지 않을 공산이 크다. 상당한 액수의 임금을 받던 자동차 공장 블루칼라뿐 아니라,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직업으로 꼽히는 의사, 변호사, 애널리스트 등 전문직 일자리가 인공지능 로봇으로 빠르게 대체될 것이다.

반면 4차 산업 혁명의 결과로 생겨날 새로운 직업은 대부분 서비스직이다. 대형할인점, 동네 편의점, 패스트푸드 매장을 포함한 크고 작은 요식업체에서 육체노동과 감정 노동을 동시에 수행하는 서비스 노동자, 아동 보육이나 노인 부양 등 돌봄 노동에 종사하는 이가 대표적이다.

한 가지 일만 잘하는 로봇은 허드렛일이나 육체노동은 물론이고 극심한 감정 노동까지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일에는 영 소질이 없다. 그런데 이렇게 로봇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노동자는 그 일의 중요성에도 터무니없이 낮은 임금을 감수해야 한다. 임금이 낮으니 인공지능 로봇 시대에도 이런 노동은 오히려 늘어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맥도날드나 롯데리아는 패스트푸드 매장을 자동화할 수 있지만 절대로 10, 20대 아르바이트생을 없애지 않는다. 바로 이 대목이 4차 산업 혁명이 가져올 재앙이다. 높은 소득이 보장된 일자리를 차지하는 극소수와 로봇이 못하는 힘든 육체노동과 감정 노동을 동시에 수행하는 대다수가 또렷하게 나뉘는 초(超)양극화 시대!

마이크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는 '로봇세(robot tax)를 주장하고 나섰다. ⓒwikimedia.org

빌 게이츠로봇세 도입 주장 왜?

이런 초양극화 시대는 결국 자본주의에도 재앙이다. 왜냐하면 20세기와 함께 헨리 포드가 활짝 열어젖힌 대량 생산-대량 소비야말로 자본주의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초양극화 시대의 가난한 대다수는 기업이 생산한 상품을 소비할 여력이 없다. 상품은 넘치는데 소비할 사람은 없는 상황, 이것이야말로 자본주의가 그토록 무서워하는 공황이다.

4차 산업 혁명을 이끄는 자본가 빌 게이츠가 ‘로봇세(robot tax)’ 도입을 주장하고 나선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로봇세는 인공지능 로봇, 정확히 말하면 그것을 사용해 높은 이익을 얻는 기업에 부과하는 세금을 일컫는다. 임금 노동자가 소득세와 각종 사회보장비를 내는 것처럼 로봇도 비슷한 수준의 세금을 내라는 것이다.

이렇게 로봇세로 마련한 돈은 여러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모든 시민에게 조건 없이 상당한 액수의 돈을 똑같이 쥐어주는 ‘기본 소득(basic income)’의 재원으로 쓸 수 있다. 로봇세로 재원을 마련한다면 기본 소득 액수를 현실적인 수준까지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나은 아이디어는 로봇세로 마련한 재원으로 로봇이 대체할 수 없는 꼭 필요한 일자리의 임금을 높이는 것이다. 아동 보육이나 노인 부양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임금을 현대자동차 공장 노동자만큼 높인다면 어떻게 될까. 100만 원대 초반의 어린이집 교사 월급을 300만 원 수준으로 올린다면 보육의 질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을까.

강조하건대, 4차 산업 혁명은 어쩌면 재앙이다. 하지만 우리는 더 늦기 전에 답을 찾아야 한다. 늘 그랬듯이.

이 글은 강양구 기자의 팩트체크와 <주간동아> 1081호(2017년 3월 29일자) ‘강양구의 지식 블랙박스’(로봇에 세금을 물리자)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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