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우슈우'는 틀리고 '규슈'는 맞다?

  • 기자명 정재환
  • 기사승인 2018.01.03 00:3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큐우슈우 역사기행>이란 책을 냈을 때, ‘어떤 책이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지만, ‘큐우슈우가 어디냐, 규슈 아니냐, 현행법 위반 아니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다. 사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일본 열도 중 한 섬의 이름을 ‘규슈’로 알고 있다.

하지만 사진에서처럼 ‘큐슈’라고 표기한 것도 적지 않다. 여행 안내서를 비롯한 여러 책에서도 <여행박사 북큐슈>, <에키벤 1 : 큐슈>, <큐슈로 가출하기>와 같은 제목을 볼 수 있다. 그러면 나는 왜 ‘규슈’도 ‘큐슈’도 아니고 ‘큐우슈우’라고 했을까? 일본에는 ‘규슈’가 없다고 하면 좀 지나칠까?

일본의 수도를 한국인들은 ‘동경’ 또는 ‘도쿄’라고 부른다. 동경이라고 읽는 것은 일본어의 한자 표기 ‘東京’을 한국식으로 음독한 것이다. 중국의 수도 ‘北京’을 ‘북경’이라고 읽는 것과 같다. 동경(東京), 경도(京都), 대판(大阪), 복강(福岡) 등이 다 같은 방식으로 읽고 표기한 예다.

그런데 요즘에는 동경, 경도와 같은 음독보다는 원지음을 고려하여 표기하는 추세라 도쿄, 교토, 오사카, 후쿠오카 등으로 더 많이 적고 읽는다. 문제는 원지음에 가깝게 표기한다면서도 실제로는 원지음과 동떨어진 소리로 표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 이와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어두에서 거센소리 표기 불가 방침이 원인

이유는 일본어에 대한 외래어 표기법 때문인데, 첫째는 일본어를 한글로 적을 때 어두에서 일본어의 청음과 탁음을 모두 예사소리로 적는다는 규정 때문이다. 이 규정에 해당되는 것은 아래 표에서 보듯이 ‘か, が’와 ‘た, だ’이다. 일본어의 청음 ‘か’와 ‘た’는 각각 한글 ‘ㅋ’와 ‘ㅌ’에 가깝고 탁음 ‘が’와 ‘だ’는 ‘ㄱ’와 ‘ㄷ’에 가깝다. 따라서 ‘か’는 ‘카’, ‘が’는 ‘가’로 ‘た’는 ‘타’, ‘だ’는 ‘다’로 적으면 원지음에 가깝다.

 

외래어 표기법-제2장 표기 일람표-일본어 가나

 

‘京都’의 ‘京’은 ‘ㅋ’에 가까우므로 ‘쿄’라고 적을 수 있지만, 어두에 거센소리를 적지 않는다는 규정에 따라 ‘교’라고 적는다. ‘都’ 역시 청음이어서 ‘ㅌ’에 가깝다. 신기한 것은 어두에서는 청음을 예사소리로 적지만, 어중이나 어말에서는 한글의 거센소리(ㅌ)와 예사소리(ㄷ)로 구분해 적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교토’가 된다.

‘東京(동경)’의 ‘東’ 역시 청음이어서 ‘ㅌ’에 가깝지만, 역시 어두에서 거센소리가 나는 ‘ㅌ’을 쓸 수 없으므로 ‘ㄷ’을 사용하여 ‘도’가 된다. ‘京’ 역시 청음이지만 어중과 어말에는 거센소리가 나는 ‘ㅋ’를 쓸 수 있으므로 ‘쿄’라고 쓴다. 그 결과 ‘도쿄’가 된다.

일본어의 청음을 어두에서는 거센소리로 적을 수 없고, 어중과 어말에서는 거센소리로 적을 수 있다는 규정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문제는 그로 인해 원지음 ‘토우쿄우(東京: とうきょう)’와 ‘쿄우토(京都: きょうと)’에서 상당히 먼 ‘도쿄’와 ‘교토’가 되었다는 점이다.

장단모음 표기 안하는 한국어 표기법을 그대로 적용

또 하나의 문제는 일본어의 ‘장모음을 따로 표기하지 않는다.’는 규정이다. 실상 ‘京都(경도)’의 ‘京’은 ‘쿄’가 아니고 장음으로서 ‘쿄우’에 가깝다. ‘東京(동경)’의 ‘東’도 ‘토’가 아니고 역시 장음이어서 ‘토우’에 가깝다. 따라서 한글로 ‘토우쿄우’, ‘쿄우토’라고 적으면 되는데, 장음을 적지 않는다는 규정 때문에 ‘도우쿄’나 ‘교우토’라고 하지 않고 ‘도쿄’, ‘교토’가 된 것이다.

 

외래어 표기법-제2장 표기 일람표-일본어-제3장 표기 세칙-제2항 장모음

 

장모음을 따로 표기하지 않는다는 규정은 왜 만들었을까? 아마도 우리말을 적을 때 장음을 표기하지 않으므로 당연히(?) 일본어의 장음도 적지 않기로 했을 가능성이 높다. 표기상 보이지 않지만 우리말에는 장단음의 구별이 있다.

‘모든 기간’을 뜻하는 ‘전기’의 ‘전’은 장음이 아니지만, 에너지 중 하나인 ‘전기’의 ‘전’은 장음이므로 ‘전기’라고 적는다 하더라도 ‘전:’이라고 길게 발음해야 한다. 이야깃거리인 화제는 짧지만, ‘제천 화재 참사’의 ‘화재’의 ‘화’는 길다.

현행 외래어 표기법은 한글 장점 못 살려

우리말조차도 장음 표시를 하지 않으므로 일본어의 장음도 표기하지 않는다! 게다가 외국인들도 ‘서울’을 ‘쎄울’로 발음하기도 하고, ‘박지성’을 ‘팍지성’이라고도 한다. 일본인이라면 대개 ‘소우루’, ‘바쿠지성’이라고 할 것이다. 배용준을 ‘용사마’가 아닌 ‘욘사마’라고도 한다. 피장파장인데 원지음하고 좀 다른 게 무슨 문제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한글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문자 가운데 가장 뛰어난 표음문자라고 한다. 닭 울음소리, 개 짖는 소리까지도 표기할 수 있다고 한다. 한글의 장점을 자랑하면서도 외래어 표기법으로 바로 그 한글의 장점을 죽이고 있다.

현행 외래어 표기법은 1986년 제정되었고 그 후로 부분적인 개정이 이루어졌지만 부족하다. 필요하면 헌법도 바꾼다. 모든 외국어를 원지음에 가깝게 표기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일본어라면, 표기법만 좀 손보면 얼마든지 ‘토우쿄우’, ‘쿄우토’, ‘큐우슈우’, ‘오오사카’라고 원지음에 가깝게 적을 수 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