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법은 성범죄에 얼마나 관대할까?

  • 기자명 송영훈 기자
  • 기사승인 2018.03.03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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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고은 시인의 성추행 폭로에 이어 연출가 이윤택 씨가 단원들을 대상으로 18년 동안이나 성희롱과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내용이 폭로되면서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또 청주대 교수로 재직 중인 배우 조민기 씨도 제자들을 상대로 성희롱을 해 왔다는 폭로가 나오고, 여러 문화계 인사들에 대한 성추행-성폭력 폭로가 이어지면서 유명 인사들의 성추문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일부 인사들은 사실임을 인정했지만, 이윤택 씨는 기자회견을 통해 “법적 절차에 따라서 그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란다”며 자신을 둘러싼 성폭력 가해 의혹을 일부 부인했다. 또 미성년 단원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극단 번작이 대표는 경찰 조사에서 “서로 호감이 있었다. 강제적으로 한 건 아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피해자들은 이들에 대해 제대로 된 강력한 처벌을 원하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성범죄에 관대한 한국의 법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이윤택 씨를 비롯해 비슷한 사건의 가해자들이 ‘법적 절차’ 운운하는 데는 그런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성폭력'의 개념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

포털사이트 다음백과사전에 따르면, 성범죄는 크게 성폭력과 성매매로 구분되며, 강간죄, 강제추행죄, 준강간·준강제추행죄, 강간 등에 의한 치사상죄, 미성년자·심신장애자 등에 대한 간음죄,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죄, 혼인빙자 등에 의한 간음죄, 미성년자에 대한 간음·추행죄, 성매매에 관한 죄 등이 모두 성범죄에 속한다.

최근 일고 있는 미투 운동의 핵심인 '성폭력'은 성적인 행위로 타인에게 육체적·정신적 손상을 주는 물리적 강제력으로, 강간이나 강제추행뿐만 아니라 언어적 성희롱, 음란성 메시지 및 몰래카메라 등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서 가해지는 모든 신체적·정신적 폭력을 포함한다. 성폭력은 <형법> 및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중심으로 그 범위를 정하고 있다.

성폭력은 성폭행, 성희롱, 성추행을 모두 포함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강간, 강제추행, 매춘 등 직접적인 성 행위, 또는 유사 성행위와 같은 경우를 주로 말한다. 그러나 이는 시대와 사회 통념에 따라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개념이다.

성희롱은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3호 라목에 의하면 '업무, 고용 그 밖이 관계에서 업무 등과 관련하여 성적 언동 등으로 성적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성적 언동 그 밖의 요구 등에 대한 불응을 이유로 고용상의 불이익을 주는 언행'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이 외에도 남녀고용평등법과 남녀차별 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성추행은 성희롱과 혼용되기도 하는데, 성희롱이 직장 내에서 일어나는 것에 초점을 둔데 비해 성추행은 신체적, 언어적, 기타 암시적인 성적 굴욕감을 주는 행위를 통틀어 말한다. 성적 수치심을 느낄 정도로 강제로 신체 접촉을 하는 경우가 주로 해당된다.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공중 밀집 장소에서의 추행도 포함된다. (검찰청 블로그)

가장 최악의 성범죄인 ‘성폭행’은 상대와 동의 없이 강제로 성관계를 맺는 일을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형법상 강간을 말한다.

 

성희롱은 형사처벌 적용 안돼

성폭력의 처벌은 <형법>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중심으로 규정하고 있다. 강간죄의 경우 3년 이상의 유기징역, 강간 등의 살인 치사죄에는 사형 또는 무기 징역이 선고되며, 죄질에 따라 경감된다.

강간까지는 아니지만 형법은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해 추행을 한 자(강제추행)와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 불능의 상태를 이용해 추행을 한 자(준강제추행)를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한다.

법원이 성폭력범죄를 범한 사람에 대하여 형의 선고를 유예하는 때에는 보호관찰처분을, 형의 집행을 유예하는 경우에는 보호관찰·수강명령·이수명령을 할 수 있다. 성폭력 범죄자는 처벌 외에도 신상정보 공개,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및 성충동 약물치료 등의 명령을 받을 수 있다.

강간 등으로 유죄판결이 확정된 사람은 신상정보 등록대상자가 되어 성범죄자의 성명, 나이, 주소 및 실제 거주지, 사진 등이 공개되며, 성폭력 가해자가 유죄판결을 받거나 재범 위험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법원의 명령을 통해 신상정보를 공개하고, 공개명령 기간 동안 성명, 실제거주지, 사진 등을 고지대상자가 거주하는 지역주민 등에게 고지한다.

종종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성희롱’은 형법으로는 처벌되지 않는다. 그리고 법률이 규정하고 있는 성희롱은 직장 내 성희롱과 아동청소년 대상 성희롱이다. 그러나 성범죄의 특성상, ‘성희롱’은 ‘성추행’이나 ‘명예훼손’ 등으로 형사상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

2013년 6월 19일부터 성범죄에 대한 친고죄가 폐지되었다. 피해자가 아닌 제3자의 신고로도 처벌이 가능하다.

국내 성범죄 처벌 수준 높은 편

조선일보는 2012년 9월 21일 ‘우리나라와 각국의 성범죄 처벌법’이라는 제목의 인포그래픽 기사에서 “아동 성범죄가 해마다 늘고 있지만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다. 우리나라의 처벌 기준이 외국에 비해 가볍다는 지적”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영국 가디언은 지난해 3월 6일, “국제여성인권단체인 ‘이퀄리티 나우’(Equality Now)가 세계의 성폭력 관련법을 분석한 결과 73개국에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지난 2014년 5월 이훈동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검찰청의 연구용역을 받아 수행한 ‘성폭력범죄에 대한 유럽 각국의 형량 및 형 집행실태’ 보고서는 “우리나라는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다른 선진국들보다 성폭력범죄의 처벌과 관련된 법령이 많고 성폭력범죄에 대한 법정형이 상당히 높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 보고서에서도, 국민 20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 한 결과, 한국 국민 10명 중 9명은 성폭력 범죄에 대한 법원의 형량이 부적절하다고 느끼고 있으며, 76.9%는 성폭력 범죄에 사형이 필요하다고 답하는 등 성폭력 범죄에 대한 ‘중형주의’를 바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기온이나 경제지표보다는 체감기온이나 체감경기가 더욱 민감하듯이, 성범죄와 같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범죄유형에서는 국민들의 느끼는 심각성이 더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법원이 성폭행범과 피해자의 결혼 주선하기도

앞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성폭력의 심각성을 본격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에 들어서이다. 그 이전에 여성의 전화 등의 여성단체에서 성폭력의 문제를 제기했으나, ‘성폭력’이라는 관념도 뚜렷하지 않았고, 비난의 화살을 성폭력 범죄자가 아니라 피해자에게 돌리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신고율은 2.2% 정도에 불과한 실정이었다.

1970년대에는 법원이 성폭행 사건 재판과정에서 성폭행 피고를 피해자와 결혼을 시켜주기도 했는데, 불과 20년 전인 1998년에도 여고생을 성폭행한 범인이 피해자의 부모와 추후 결혼에 합의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 처분을 내리기도 했다.

2004년 일어난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사건’은 최근에도 관련 게시물이 SNS를 통해 간간이 공유될 정도로 큰 파문을 일으킨 사건인데, 44명의 가해자와 70명의 추가 공범자들 중 처벌받은 남학생은 30명이었다.

검찰은 직접적으로 개입된 44명 가운데 10명만 기소하고, 나머지 34명 중 20명은 소년부에 송치했다. 13명에 대해서는 피해자와 합의했거나 고소장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소권이 없음’처분과 함께 풀어주었다. 한 명은 다른 사건에 연루되어 다른 청에 송치되었다.

피의자들은 보호 관찰 처분 등을 받으면서 법적인 처분이 끝났다. ‘전과자’라는 기록도 남지 않았다. 지금은 모두 풀려난 상태이며, 대학에 다니거나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피해자가 당한 상처와 고통에 비하면 터무니없는 솜방망이 처벌이었다. 수사과정에서 한 경찰관은 피해자의 행실을 탓하는 말을 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2018년인 지금도 크게 바뀌지는 않고 있다.

성폭력은 피해자가 잘못이 아닌 가해자의 명백한 범죄행위임을 나타낸 작품이 ‘성폭력 근절 포스터 공모전’에서 수상 후 SNS에서 호평을 받은 것이 불과 1년 여 전의 일이다.

지난 23일에는 자신이 가르치던 제자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했던 체육교사에게 검찰이 징역 5년을 구형했지만 사법부가 집행유예를 선고하자 해당 학교 졸업생들이 법원의 판결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피해자, 국민의 감정과 다른 법원의 판단  

한국성폭력상담소의 김신아 활동가는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를 통해 “가해자를 정확하게 처벌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피해자들이 용기 있게 신고, 고발했는데 수사나 재판과정에서 성폭력 통념 등이 개입되면서 피해사실이 제대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또 “현재 법적 판단 기준 역시 협소하다. 피해자 관점에서 제대로 된 해석이 있어야 정확한 처벌이 이뤄질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법적으로는 성폭력 범죄가 협소하게 인정되는 경향이 있다. 형법 상 강간 및 강제 추행은 ‘폭행 또는 협박’과 ‘피해자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 ‘업무·고용 관계에서의 위계 또는 위력’ 등을 요건으로 두는데, 수사기관 및 사법부가 협박과 위계·위력의 범위를 좁게 해석해 성폭력 피해자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유엔 인권위원회가 2011년과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우리나라에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를 폐지할 것을 요청했는데, 여전히 성폭력 관련 재판 등에서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적용되고 있기도 하다.

정완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판사들이 오판이나 주관 개입 염려 때문에 법조문대로만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그 때문에 국민의 법감정에 위배되는 판결이 끊이지 않고 있다”며 “피해자의 수치심 및 가해자의 성적 욕망 충족 여부를 중심으로 판단해야 하는데 이를 제쳐두고 ‘평균적인 일반인’의 관점으로 유무죄를 판단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통계로 나타난 법원의 판단

영남대 산학협력팀의 ‘양형기준제의 현황 및 개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6월부터 2014년 5월까지 가해자가 성인이고 유죄 판결이 난 성범죄 1,700건의 형량을 집계한 결과, 52.4%(890건)에 집행유예가 선고되었다. 실형 비율은 47.6%(810건)에 그쳤는데, 실형률은 2012년 56.4%에서 2013년 47.7%으로, 2014년에는 33.5%에 불과했고 형량도 2012년 46.4개월에서 2014년 33.1개월로 크게 감소했다.

지난 3월 2일 SBS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성폭력 범죄 2만 7천여 건 가운데 40% 정도만 기소됐다. 1심에서 유기징역이 선고된 건 다섯 건 중 한 건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집행유예나 벌금형에 그쳤다.

또 2013년 10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서영교 의원이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법원별 양형기준 준수율 현황’ 자료에 따르면, 성범죄의 경우 양형기준 준수율 85.7%로, 14%에 이르는 성범죄자들이 ‘봐주기 판결’이 수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이후 5년 간 통계를 보면 이후 조금씩 증가추세를 보이기는 했지만 다른 범죄군에 비해 여전히 낮은 수치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박주민 의원 블로그)

한국은 성폭력 범죄자의 재범 비율이 45%가 넘지만, 성폭행의 불기소 처분비율은 49.4%에 이른다.

자유한국당 윤종필 의원이 2017년 국정감사에서 법무부로부터 제출 받은 ‘2012∼2016년 성폭력 사범 재범률 현황’에 따르면 2012년 1,311명이던 성범죄자 재범 인원은 2016년 2,796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또 등록된 성범죄자 신상정보마저도 남은 등록기간을 줄여주는 ‘클린레코드제’를 통해 지워지고 있다.

 

법 규정 자체보다 법 적용과 판단이 문제

한국 정부는 최근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 회의에서 성폭력에 대한 안이한 대응으로 질타를 받았다.

국민일보에 보도에 따르면, 지난 22일 스위스 제네바 유엔본부에서 열린 CEDAW 제8차 한국 국가보고서 심의에서, 루스 핼퍼린-카다리 부의장은 “한국 형법은 강간을 너무 엄격하게 정의하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하고, “CEDAW는 일반권고에서 피해자의 동의 여부를 기준으로 설정토록 하고 있다”며 “한국의 법이 국제 기준과 합치하는지 말해 달라”고 요구했다.

또 “성폭력 피해자들을 무고죄로 고소하거나 이들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거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는 모든 피해자를 침묵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민들의 감정도 국제적인 기준도 한국 법원의 성범죄에 대한 판단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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