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비서 원치 않았어도 범죄성립 따져봐야

  • 기자명 최윤수
  • 기사승인 2018.03.12 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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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9일 김지은 정무비서는 안희정 충남도지사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처음 안 지사 측은 부적절한 관계는 인정하면서도 합의가 있었다고 주장했으나, 안 지사 본인이 다음날 새벽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비서실의 입장은 잘못된 것이라고 인정했을 뿐 아니라 도지사 직에서도 사퇴했다.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되면서 안 전 지사의 변호인은 있는 사실 그대로 진술했으며, 판단은 검찰의 몫이라고 밝혔다. 도덕적으로 잘못임을 인정하면서도 법적으로는 범죄가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로 보인다.

안희전 전 충남도지사(왼쪽)와 비서 김지은씨.

피해자 동의 여부가 성범죄 성립 결정 안해

피해자 동의가 없었는데도 죄가 아닐 수 있을까. 만약 비동의 간음을 처벌하는 규정이 있다면, 동의가 없었다고 인정하는 순간 범죄가 성립한다. 그러나 우리 형법과 판례는 폭행, 협박에 의한 강간 또는 추행을 성폭력 범죄의 기본형으로 두었다(형법 제297조, 제298조). 강간죄의 경우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 협박이 있어야 한다고 판단하고(대법원 2017. 10. 12. 선고 2016도16948 등 판결 참조), 강제추행죄의 성립요건으로는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 협박을 요구한다(대법원 2012. 7. 26. 선고 2011도8805 판결 참조). 피해자가 술에 취하여 정신을 잃었다면 항거가 불가능하므로,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 또는 추행한 경우를 준강간, 준강제추행으로 규율한다(형법 제299조). 또한 폭행, 협박이 없으면 특수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처벌한다. 피해자가 13세 미만의 미성년자라면 동의를 했더라도 죄가 된다(형법 제305조). 

피해자가 13세 이상의 미성년자거나 심신미약자인 경우, 업무·고용 기타 관계로 보호, 감독관계가 있는 경우에는 위력 또는 위계만 있으면 된다(형법 제302조, 제303조 제1항 성폭력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이하 ‘성폭력특례법’ 제10조 제1항). 감호자가 구금된 여성과 간음한 때는 동의 여부를 따지지 않고 처벌하는데(형법 제303조 제2항), 피구금자들의 처우에 불평등이 발생하거나 감호자의 청렴성에 불신이 생기는 것을 방지할 필요성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현행 형법과 판례 하에서는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는 관계라도 법적으로 죄가 되지 않는 범주가 있다. 이 때문에 성폭력 범죄 성립 범위가 지나치게 축소된다는 비판과 비동의 간음죄를 신설하자는 제안이 있었고, 실제로 과거에 비하여 폭행, 협박을 좀 더 넓게 인정하는 경향은 있지만, 여전히 피해자의 동의 유무가 성폭력 범죄 성립을 결정하지 않는다.

안희정,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ㆍ추행 혐의

안 전 지사의 경우 어떤 죄명이 문제되는지부터 정리해 보자. 피해자는 폭행 또는 협박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인정하여 안 전 지사를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및 추행죄(형법 제303조 제1항, 성폭력특례법 제10조 제1항)로 고소했다.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이란 업무, 고용 기타 관계로 인하여 자기의 보호 또는 감독을 받는 사람에 대하여 위계 또는 위력으로 간음하는 것을 의미하는데(형법 제303조 제1항), 동일한 대상과 방법으로 추행을 하는 경우에는 성폭력특례법에 따라 처벌된다. 도지사와 비서 간에는 업무 감독 관계가 인정될 것이므로, 결국 위계 또는 위력이 있었는지가 쟁점이다.

손석희 앵커는 인터뷰 중 “위계에 의한 강압”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때의 위계는 지위나 등급을 의미하는 “위계(位階)”로 보인다. 그러나 형법에서 말하는 “위계(僞計)”는 남을 속이기 위해 거짓으로 꾸민 계획이라는 뜻으로서 전혀 다른 의미다. 구체적으로 위계(僞計)는 행위자가 간음 또는 추행의 목적으로 상대방에게 오인, 착각, 부지를 일으키고는 상대방의 그런 심적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 또는 추행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오인, 착각, 부지는 간음 또는 추행행위에 대한 것이어야 하므로, 병원놀이나 종교의식이라고 속여 추행 또는 간음을 하는 것은 해당하지만, 거짓말로 범행장소에 불러 간음 또는 추행한 것은 위계에 의한 범죄가 되지 않는다(대법원 2014. 9. 4. 선고 2014도8423 등 판결).

따라서 안 지사가 업무상 상의할 것이 있다고 비서인 피해자를 호텔 등에 불러 간음 또는 추행을 했다고 해도 위계에 의한 것은 아니다. 결국 “위력”에 의한 것이었는지가 문제다.

강간죄 성립요건 '폭행·협박' 엄격하게 인정

대법원은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죄에서의 “위력”에 대해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세력을 말하고, 유형적이든 무형적이든 묻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폭행·협박뿐 아니라 사회적·경제적·정치적인 지위나 권세를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며, 위력행위 자체가 추행행위라고 인정되는 경우도 포함시켰다. 나아가 현실적으로 피해자의 자유의사가 제압될 것임을 요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이 부분까지만 보면, 도지사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신체 접촉을 한 경우는 이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대법원은 덧붙여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죄는 성적 자유를 보호법익으로 하는 것이므로 해당 여부는 개인의 성적 자유가 현저히 침해되고, 일반인의 입장에서 보아도 추행행위라고 평가될 경우에 한정하여야 한다고 전제했다. 키스, 포옹 등과 같은 경우에 있어서 그것이 추행행위에 해당하는가는 피해자의 의사, 성별, 연령, 행위자와 피해자의 이전부터의 관계, 그 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 구체적 행위태양, 주위의 객관적 상황과 그 시대의 성적 도덕관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보았다(대법원 1998. 1. 23. 선고 97도2506 판결 참조). 가해자와 피해자 간에 업무상 지위 차이가 있고, 피해자가 원하지 않았더라도 범죄 성립을 부정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 것이다.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의 경우에는 좀 더 복잡하다. 대법원의 명시적인 판단은 없지만,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에서보다 위력의 의미를 엄격하게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강간죄와 강제추행죄는 모두 “폭행 또는 협박”을 구성요건으로 하지만, 강간죄 성립 요건인 “폭행 또는 협박”을 좀 더 엄격하게 인정하고 있다. 이 견해에 따르면, 안 전 지사에 대한 고소 사실 중 추행보다 간음 부분의 처벌이 좀 더 어려울 수 있다.

안 전 지사가 처벌될지 여부는 수사과정에서 앞으로 밝혀질 사실관계에 달려 있다. 그러나 처벌 유무와 관계없이 안 전 지사가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행위를 했다는 사실은 이론이 없다. 이번 사건이 공직 사회 전반의 문화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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