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家는 분노조절장애가 아니라 '갑질 소시오패스'?

  • 기자명 송영훈 기자
  • 기사승인 2018.06.15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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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일가의 ‘갑질’과 관련해 조 회장 부인 이명희 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됐지만 법원에서 기각됐다. 이 씨는 일부 피해자들에게 거액의 합의금을 주었고 분노조절장애 진단서를 법원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화를 참을 수 없는 ‘분노조절장애’는 조 회장의 둘째 딸인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광고대행사와의 미팅 자리에서 했던 ‘갑질’사건 때도 언급된 적이 있어, 항공기 회항사건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조 회장의 첫째 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함께 조 회장 일가의 가족력이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분노조절장애’는 한진일가의 ‘갑질’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있을까? 뉴스톱에서 확인했다.

영화 <인사이드아웃>에서 '화(anger)를 상징하는 '버럭이'

 

‘분노조절장애’라는 질환은 존재하지 않는다.

병적으로 화를 자주 혹은 심하게 내는 사람에 대해 흔히 ‘분노조절장애’를 의심하지만, ‘분노조절장애’는 의학적으로 정확한 진단명이 아니다.

WHO(세계보건기구)의 ‘질병 및 사망 원인에 관한 표준 분류 규정’인 ‘ICD(The International Statistical Classification of Diseases and Related Health Problems)’와 통계청에서 발표하는 ICD의 한국버전인 ‘KCD(Korean Standard Classification of Diseases :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에 ‘분노조절장애(Anger disoder)’라는 항목은 존재하지 않는다.

네이버 두산백과에 따르면 ‘분노조절장애’는 심리학 용어로, 분노를 참거나 조절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과도한 분노의 표현으로 정신적, 신체적, 물리적 측면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피해를 경험하는 것을 일컫는다. 임상심리학이나 정신의학분야에서 정식으로 사용되는 진단명은 아니다.

정신의학에서는 ‘간헐성 폭발장애’와 ‘외상 후 격분장애’가 ‘분노조절장애’처럼 느닷없이 화를 내거나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증상을 보인다. ‘간헐성 폭발장애’는 자주 이성을 잃고, 지나치게 분노를 표출하는 증상이고, ‘외상 후 격분 장애’는 특정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뒤 분노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증상을 말한다.

간헐성 폭발 장애(Intermittent explosive disorder, IED)는 충동조절장애(impulse control disorders)의 하나로, 분노의 감정을 느끼면 불규칙적으로 격하게 화를 내거나 폭력을 사용해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것이 특징이다. 상대로부터 어떠한 도발을 받으면 무의식적으로 충동적 공격성을 보이며, 몇 가지 정서적 변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정신질환 진단에 있어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미국정신의학협회의 정신 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에 의하면 ‘간헐성 폭발 장애’는 ‘파괴적, 충동-조절 및 품행 장애(Disruptive, Impulse-Control, and Conduct Disorders)’에 속하며, 조울증 등 다른 정신 질환과 연계되어 복합적인 성격을 갖게 되는 경우도 존재한다. 또 증상 발현 시 3분의 1의 확률로 짧은 시간 동안 다양한 신체적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이에 비해 ‘외상 후 격분장애’는 정신적 고통이나 충격 이후에 부당함, 모멸감, 좌절감, 무력감 등이 지속적으로 빈번히 나타나는 부적응 반응의 한 형태이다. 즉,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믿음에 근거한 증오와 분노의 감정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장애를 말한다.

주로 특정 사건에 대한 기억이 3개월 이상 계속되면서 그 일을 잊지 못하고 계속해서 격분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으로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을 중심으로 심리치료를 진행하면 점진적으로 벗어날 수 있다.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왼쪽)과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화내는 대상이 구분된다면 ‘분노조절장애’가 아니라 ‘갑질’이다

특별한 과거의 트라우마가 없는데 분노조절이 안 된다면 대부분 간헐성 폭발장애로 진단을 받게 된다. 진단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언어적 공격성(예: 분노 발작, 장황한 비난, 논쟁이나 언어적 다툼) 또는 재산, 동물, 타인에게 가하는 신체적 공격성이 3개월 동안 평균적으로 1주일에 2회 이상 발생함. 신체적 공격성은 재산 피해나 재산 파괴를 초래하지 않으며, 동물이나 다른 사람에게 상해를 입히지 않음.
(2) 재산 피해나 파괴 그리고/또는 동물이나 다른 사람에게 상해를 입힐 수 있는 신체적 폭행을 포함하는 폭발적 행동을 12개월 이내에 3회 보임.

공격적 발작을 하듯이 폭발적인 행동을 하기 전에 긴장감이나 각성상태를 먼저 느끼고 행동을 하고 나서는 즉각적인 안도감을 느낀다. 공격적 행동으로 인해 동요하고 후회하며 당혹스럽게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로 인하여 직업상실, 학교적응 곤란, 이혼, 대인관계의 문제, 사고, 입원, 투옥 등을 겪을 수 있다. 가장 큰 특징은 누구에게나 이유 없이 갑자기 분노를 터뜨리는 것이다.

이명희 씨나 조현민 전무, 조현아 부사장의 분노의 대상은 자신보다 직급이 낮은 직원이거나, 사회적인 관계상 ‘을’의 위치에 있는 이들이었다. 이명희 씨와 조현민 전무의 경우 화를 내는 경우가 자주 있기는 했지만 그 대상이 주변 사람들을 가리지 않았다는 증언이나 발언은 찾을 수가 없다.

흔히 직장이나 조직에서 중간 위치의 관리자가 상사에게는 깍듯이 대하고 부하직원에게는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분노를 표출한다면 분노조절장애로 보기 힘들다. 이 경우에는 분노조절장애보다는 소시오패스, 반사회성 성격장애의 일부나 품행장애 등으로 분류된다.

일부 언론에서 국내 분노조절장애 환자 수가 6천명이라는 보도가 있었는데 이는 잘못된 수치다. 이들이 인용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에 나온 6천명(정확하게는 5986명)은 분노조절장애 즉, 간헐성 폭발장애와 병적 도벽, 병적 방화, 병적 도박, 기타 충동조절 장애 등이 포함된 ‘충동조절장애’ 환자 수다. 실제로 ‘간헐성 폭발장애’로 진단 받은 환자는 2016년 1706명이었다. 어림잡아도 3만 명에 한 명꼴인 셈이다.

폭력이나 성범죄를 저지르고 나서 음주 혹은 정신적인 상태가 문제가 있다는 의학적 진단을 통해 형을 감경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근거는 형법이다. 한국의 형법체계는 범죄자에게 형사책임 능력이 있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형법 제10조는 심신장애에 따른 형의 감면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장기간 반복적인 폭행과 폭언을 계속해 왔고, 또 심신미약이나 심신장애를 치료할 수 있는 경제적 사회적 환경에 있었는데도 치료하지 않고 방치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분노조절장애가 범죄인들의 도피처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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