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친일' 아래한글 일본기업 한컴이 만들었다?

  • 기자명 지윤성 기자
  • 기사승인 2018.08.06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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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터넷에서 한글입력 프로그램인 '아래한글'이 일본의 역사인식에 기초해 제작되었으며 한글과컴퓨터(이하 한컴)는 일본자급이 유입된 사실상 일본 회사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경희대 법학과 강효백 교수가 SNS와 칼럼에서 주장하는 것을 일부 언론이 인용해 보도하면서 널리 퍼졌다. 정말 아래한글은 '일본 아래한글'인가? 뉴스톱이 팩트체크했다.

 

 

 

아래한글 '친일설'은 한 개인의 주장에서 시작

뉴스 큐레이션 업체 인사이트는 7월 30일 <'아래한글'에서 이완용은 되고 안중근은 안되는 한자변환 기능>기사에서 페이스북 포스팅을 인용해 강효백 교수의 주장을 소개했다. 아래한글의 한자 변환 기능을 사용해 보면 독립운동가와 애국지사는 제대로 번역이 안되는 반면, 일본인과 친일부역자의 이름은 번역이 잘 된다는 주장이다. 

강 교수의 주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8년 1월 22일자 아주경제 강효백 칼럼에서도 동일한 주장을 했다. 하루 전인 1월 21일에 강 교수는 <일본아래한글'이 되버린 '아래한글'을 파사현정 해주시길!>이란 제목으로 청와대 국민청원을 했다. 해당 청원은 참여인원 23명으로 종료되었다.

강 교수가 '아래한글 친일설'을 주장하며 근거로 제시한 것은 아래와 같다.  

1. 아래한글 최신버전 한자변환에서 삭제된 한국의 고유명사와 항일 애국지사 (안중근 등)
2. 을사오적인 이완용, 권중현, 박제순 등의 친일파 이름은 한자변환이 가능
3. 이등박문, 한일합방, 황국 등 일본식 용어는 한자변환이 가능
4. 을사늑약, 한일병탄, 일제침략 등 한국의 역사 인식에 기초한 단어는 한자변환 불가

 

네이버 한자사전에서도 비슷한 현상 나타나

그렇다면 이런 부정확한 한자변환이 아래한글에서만 나타나는 것일까. 다음은 네이버 한자사전에서의 변환 사례이다.

 

네이버 한자사전 역시 변환가능한 것도 있고 아래한글 한자사전처럼 변환이 안되는 것도 있다. 네이버 한자사전 검색창에 '한일'을 타이핑했을 때 관련 한자 변환 순서에 한일합방이 먼저 나온다고 네이버의 한자 변환 기능이 일본의 역사인식에 기초해서 설계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한자변환은 기본적으로 사용자 데이터를 활용한다. 사용자가 빈번하게 변환하는 한자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에 기초해 최대한 효율적인 변환을 제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안중근의 한자 변환이 바로 안되는 것은 이용자가 안중근의 한자이름을 변환할 일이 없어서이지 일본의 세계관에 근거해서가 아니다. 

 

강 교수 지적 뒤 올해 초 한자변환 수정한 것은 사실

한컴은 올해 2월 아래한글 한자변환 시스템을 변경했다. 2018년 2월 이전 버전은 한자사전과 인명사전을 별도로 운영했다. 한자변환시 일반명사와 인명이 중복되어 나타나는 혼선을 없애기 위해서다. 일반명사는 ‘한자로 바꾸기’(입력->한자입력->한자로 바꾸기)로 변환이 가능하고 인명은 ‘인명 한자로 바꾸기’(입력->한자입력->인명 한자로 바꾸기)로 변환이 가능하다. (출처 : 한컴오피스 도움말)

한컴은 자사 홈페이지 공지사항을 통해 한자변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올해 1월 한 칼럼을 통해 일부 단어 및 인명에 대해 한자 변환이 되지 않는 현상을 인지하게 되었으며, 확인결과 2013년 14만 여 단어의 한자 데이터를 추가 및 통합하는 과정에서 총 1218개의 데이터가 유실되었음을 확인했습니다.

당사는 2월에 전 버전에 즉각적인 패치를 배포하여 누락된 데이터를 복원함으로써 제기됐던 현상들에 대해 수정 조치를 완료하였으며, 올해 출시한 한컴오피스 2018 제품에서는 한자사전과 인명사전을 동시에 보이도록 통합해 제공함으로써 한자변환 기능의 사용 편의를 더욱 높였습니다. 다만, 아직까지 업데이트를 하지 않아 해당 현상이 여전히 나타나고 있는 사용자분들께서는 아래 링크에서 패치를 받아 업데이트 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덧붙여, 당사는 사전 데이터를 특정 기관에게서만 수급받고 있지 않으며 여러 기관, 단체들과 협력하여 수시로 데이터 수급 및 검수를 받고 있습니다. 또한, 유사현상들이 더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경희대학교와 산학연을 체결하여 약 32만개의 한자 데이터에 대해 전체 검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당사는 앞으로 사용자들에게 불편사항이 발생하지 않도록 더욱더 노력하겠습니다.

 

강 교수가 아래한글 한자 변환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자 한컴이 이를 확인하고 수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에 한자변환이 제대로 안된 것을 친일의 근거로 볼 수 있을까. 

아래한글은 한자사전 데이터를 외부에서 유상으로 공급받아 서비스한다. 이는 네이버 한자사전도 마찬가지다. 직접 사전을 개발하기보다는 외부 업체에서 제공받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한컴은 2013년 한자사전 업데이트 이후 2018년 1월까지 한자사전에 대해 신경을 거의 쓰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사전편찬 작업은 돈은 별로 안되면서 돈은 많이 들어가는 사업이기도 하다. 기업 입장에서는 독자적인 사전을 개발하기 보다는 기존 업체의 것을 이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소프트웨어 설계에 역사인식을 반영한다는 것은 듣도보도 못한 설계방법론이다. 사용자가 불편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것이 개발자의 기본 사명이다. 경험적으로 볼 때 개발자들은 효율적인 개발 이외의 사안엔 관심이 없다.

아쉬운 점은 한 해 1000억원이 넘는 매출과 상장사 포함 많은 계열사를 거느린 한국의 대표적인 소프트웨어기업인 한컴이 정작  자사의 대표 제품인 아래한글의 한자사전 확장과 유지보수에는 별로 신경을 쓰고 있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다. 

 

한글과컴퓨터가 일본이 투자한 기업? 

강효백 교수의 두번째 주장은 한컴이 일본인투자기업이라는 것이다. 그는 칼럼에서 "기업 유형란에 표기된 ‘외국인투자기업(일본)’이 눈에 확 띈 것이다. 한국의 대표 워드프로세서 아래한글의 '한글과 컴퓨터'가 일본이 투자한 외국인투자기업이라니"라며 캡쳐사진을 올렸다.

 

이미지상으로는 분명 외국인투자기업(일본) 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본지가 네이버 지식백과 ‘한글과컴퓨터’ 소개화면을 확인해보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그리고 해당 본문내용의 마지막 업데이트 날자를 확인하였다.

 

적어도 해당 본문내용은 강 교수의 칼럼 게재시점 이후에 수정된 적은 없다. 외국인 직접투자여부는 주주현황정보와 공시 내용을 통해 확인 가능하다. 한글과컴퓨터는 외국인 역시 주식을 사고 팔수 있는 코스닥 상장기업이지만 최근 5년간의 공시내용중에 유의미한 일본 자본의 유입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2018년 8월 1일 기준 외국인 주식 보유율은 16.91%이다.

한글과컴퓨터의 주요 주주구성은 2018년 8월 1일 현재 다음과 같다. (출처)

국민청원의 내용중 강교수가 주장한 “21세기 매판자본 매국기업 한컴- 일본자본의 문화침략“ 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한글과컴퓨터는 2006년부터 일본 소프트웨어 유통 대기업인 저스트시스템을 통해 자사의 오피스중 파워포인트에 해당하는 프리젠테이션용 오피스 소프트웨어 상품명 “슬라이드”를 일본 시장에 수출한 적은 있으나 자본 교류는 전무했다. 

 

한컴은 좋은 소프트웨어를 만들 의무가 있다

한국에서 한글과컴퓨터 그리고 아래한글 소프트웨어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특수성이 존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자국언어인 한글을 최초로 오피스 소프트웨어에서 가능하도록 개발하였으며 벤처 1호, 소프트웨어 기업 1호 코스닥 상장사, 소프트웨어 사관학교 같은 많은 타이틀이 함께하여 왔다.

1998년 6월 15일 이찬진 한글과컴퓨터 사장과 김재민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사장이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美 MS의 한글과컴퓨터 투자계획을 밝히고 있다.

 

1998년 6월15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한글과컴퓨터와 마이크로소프트코리아의 공동 기자회견장을 통해 아래한글 개발을 포기하고 마이크로소프트(MS)에서 2000만달러 투자계약을 받기로 발표했다. 아래아한글을 MS에 내줄 수 없다는 여론이 확산됐다. 한글학회를 비롯해 15개 사회단체가 ‘한글지키기국민운동본부’를 세우고 국민 모금에 나섰다. 국민주 20억원과 메디슨의 50억원 등 100억원을 한컴에 투자했다. 한컴은 MS와의 합의를 파기했다.

창업자 이찬진 사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 뒤 한컴은 재정난 해결을 위해 아래아한글을 쓰자는 취지로 ‘아래아한글 8·15’를 1만원에 내놓고 많은 국민들이 잘 사용하지도 않는 ‘아래아한글 8·15’ 버전을 구매하였다. 이후 많은 대주주를 거치면서 경영진갈등, 횡령배임 등의 문제들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생존하고 잘 성장해 온 것은 사실이다.

1000억원이 넘는 매출과 30%가 넘는 영업이익률 그리고 MS 오피스 대비 국내 점유율 27.9%. 한컴의 성과다. 그런데 이는 교육기관, 공공기관 덕분에 이룬 점유율이다. 국민세금 덕을 본 것이다. 그만큼 한글과컴퓨터 그리고 아래한글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책무를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소프트웨어로서 더 높은 완벽성을 추구해야 하는 의무는 너무도 자명하다. 국민들은 한글과컴퓨터로부터 받아야 하는 빚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한컴 아래한글 사전기능이 빈약하고 빠져 있는 단어들이 많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라면 강 교수의 주장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한컴이 일본기업이라든지, 아래한글이 친일소프트웨어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2017년 올해의 사자성어였던 파사현정(破邪顯正ㆍ사악한 것을 부수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을 사용할 정도는 아니다. 

더욱 유감인 것은 일부 언론이다. 최소한의 팩트체크 없이 소셜미디어상의 주장을 그대로 옮기는 것은 언론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가짜뉴스 확산의 주범이 되는 것이다. 인사이트는 페이스북 글을 옮기는 것 빼고 사실확인을 위해 무엇을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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