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판사 탄핵 가능할까?

  • 기자명 송영훈 기자
  • 기사승인 2018.10.0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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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벌어진 재판 거래 의혹 등 이른바 ‘사법농단’ 사태로 국민들의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고 있는 가운데 검찰의 수사도 법원의 비협조로 지지부진하자 해당 판사들을 탄핵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사법농단 판사 탄핵은 지난 6월 10일 민중기 서울중앙지법원장 기자간담회에서 처음 제기된 이후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 등 시민사회단체가 꾸준히 주장해 오고 있다. 9월 27일에는 참여연대와 민변, 5개 정당 국회의원 주최로 이 사안에 대한 토론회가 열리는 등 탄핵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한국에서 법관 탄핵은 어느 선까지 가능할까?

 

헌법 65조 “법관도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규정

이미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적용되며 위력을 보인 탄핵제도는 일반적인 징계 절차나 형벌로 처벌하기 어려운 대통령 등의 정부 고위직이나 법관과 같이 신분이 보장된 특수직 공무원을 파면하는 제도다. 위법행위를 저지른 고위 공무원을 민주적으로 파면하는 것이 목적이다. 한국에서는 해당 공무원이 직무상 중대한 위법행위를 했을 경우 국회가 소추하고 헌법재판소가 심판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헌법 제65조 1항은 “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행정각부의 장·헌법재판소 재판관·법관·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감사원장·감사위원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법관이 탄핵대상이 될 수 있음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사법 농단과 관련한 법관들의 탄핵 사유로는 헌법 제103조 ‘재판 독립 원칙’과 헌법 제7조 공무원의 ‘공익 실현 의무’가 우선 언급되고 있으며, 법원행정처의 업무범위를 규정한 법원조직법 등도 위반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판사이자 국회의원이었던 서기호 변호사는 사법농단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한 조직적 범죄’라고 주장했다. 서 변호사는 지난 2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사법농단 관여 법관 탄핵의 의의와 필요성’을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2013~2017년까지 3명의 법원행정처장이 모두 재판개입 등 사법농단 사태에 관여한 사실이 확인됐고, 행정처장을 임명 및 지휘해왔던 양승태 대법원장의 총괄 지시에 따랐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판사 탄핵' 민주당 단독 발의 가능...헌법재판소 심리 거쳐

탄핵소추는 국회가 행하는데, 헌법 62조 2항에는 “제1항의 탄핵소추는 국회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발의가 있어야 하며, 그 의결은 국회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재 여당인 민주당 단독으로 발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의 과정이 간단하지는 않다. 국회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을 얻기 위해 야당의 협조를 얻어야 하고, 국회의 의결 후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절차와 같이 헌법재판소가 심리 절차를 거쳐 결정하게 된다.

헌법재판소법에 따라, 탄핵심판 청구가 이유 있는 경우 헌법재판소는 피청구인을 해당 공직에서 파면하는 결정을 선고하는데(53조 제1항), 탄핵의 결정을 하는 경우에는 헌법재판관 6명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23조 제2항 제1호). 즉, 5인 이하가 찬성한 경우에는 심판청구가 기각된다. 현재 ‘사법농단’수사에 대해 ‘제 식구 감싸기’라는 지적을 받으면서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법원의 모습을 감안하면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순탄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해외에서는 판사 탄핵 빈번... 한국에선 한번도 없어

해외에서는 법관에 대한 탄핵 소추 사례를 종종 찾을 수 있다. 특히 행정부 고위관료보다 사법부 고위 법관에 대한 탄핵이 좀 더 일반적인 편이다. 앞서 ‘사법농단 관여 법관 탄핵의 의의와 필요성’ 토론회에서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해외에서 탄핵소추는 일반적으로 법관을 향한다”고 지적했다. 선거를 통해 선출돼 민주적 정당성을 갖게 되는 입법부와 행정부의 경우와 달리 사법부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까닭에 더 엄격한 견제를 받는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미국의 경우 연방대법관만 15건 탄핵 소추됐고 일본에선 법관을 대상으로 탄핵소추를 청구한 사건이 1948~2017년까지 1만 9814건, 이 가운데 탄핵이 소추된 건 48건”이라고 밝혔다. 특히 일본의 경우 재판관탄핵법을 통해 모든 국민이 법관에 대한 탄핵 소추를 청구할 권한을 명시하고 있어, 청구인의 경우 대다수가 일반 국민(89만3474명)이었으며 변호사가 2659명, 최고재판소 8건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비해 한국에서 판사 탄핵소추 시도는 국회 개원 이후 지금까지 두 차례 있었으나 부결되거나 폐기돼 실제로 소추가 이뤄진 적은 없다. 1985년 유태흥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소추가 발의됐지만 본회의에서 부결돼 탄핵심판 절차가 진행되지 않았고 2009년에도 신영철 대법관에 대한 탄핵소추가 발의됐지만 회기 종료 때까지 처리되지 못하면서 자동 폐기됐다.

유태흥 전 대법원장은 당시 불법시위 혐의로 즉결심판에 넘겨진 대학생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박시환 전 대법관을 지방 법원 판사로 좌천시키고 이에 대해 유감을 표현한 서태영 판사 또한 지법으로 좌천시키자 법관들이 반발해 일어난 사법파동의 여파로 탄핵소추가 발의됐고, 신영철 전 대법관의 탄핵소추안 역시 ‘재판개입’을 주요 소추 사유로 기재했다.

한편 현재의 법관징계법상 가장 높은 징계수위는 정직 1년이다. 사상 초유의 사법농단 사태에 연루된 판사들을 국회가 직접 탄핵소추해야 한다는 주장이 호응을 얻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에 비해 헌법 65조 4항은 “탄핵결정은 공직으로부터 파면함에 그친다. 그러나, 이에 의하여 민사상이나 형사상의 책임이 면제되지는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종합하면 판사 탄핵은 법으로 규정되어 있지만 한번도 실행된 적이 없다. 법원행정처의 '불법 재판 개입' 정황이 드러나는 상황이긴 하지만 어떤 법관을 탄핵할지에 대해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재판거래 의혹 대상 상당수가 이미 옷을 벗은 상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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