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첫 육상 금메달 니라즈 초쁘라를 이용한 정치 가짜뉴스

  • 기자명 이광수
  • 기사승인 2021.08.13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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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의 인도체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반(反)정부 농민 시위를 지지한다"는 허위정보는 어떻게 나왔나

인도는 13억의 인구 대국이지만, 국가주의가 그리 크지 않아, 뭐든 국가를 기준으로 하는 행위가 그리 크게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런 것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은 국가 대항전을 기본으로 하는 올림픽에 대해 무관심한 사회 현상이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올림픽 순위에 사람들은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메달을 딴 선수에 대해서도 그다지 큰 환호를 지르지도 않는다. 필자가 인도에 유학하던 88년도에 우리나라는 4위를 차지했다. 인도는 메달 하나도 따지 못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은사님 한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무리 국가주의 스포츠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해도 인도 같이 큰 나라가 올림픽에서 메달 하나 따지 못한 건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데 메달을 많이 따려고, 산속에 밀리터리 캠프’ (태릉선수촌을 말한 것이다) 비슷한 것을 두고, 오랫동안 강제 훈련을 하면서, 세계 4위까지 성과를 둔 한국이라는 나라도 참 한심하다.” 그때 인도의 지식인들은, 한국은 이제 가난에서 막 벗어나려고 하는 나라였고, 아직도 군부 독재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국가폭력으로 대규모의 학살이 버젓이 일어나는 나라로 인식하였다.

 

인도 최초 육상 금메달리스트인 투창 선수 니라즈 초쁘라(니라즈 초프라).
인도 최초 육상 금메달리스트인 투창 선수 니라즈 초쁘라(니라즈 초프라).

 

이런 분위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바뀌었다. 한국은 이번 올림픽이 사상 최초로 시민들의 무관심으로 치른 올림픽이었다. 종목 하나하나에는 그나마 관심을 가진 스포츠 애호가들이 여전하였지만, 그들조차도 우리나라가 몇 개의 메달을 땄는지, 몇 위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매우 바람직한 현상으로 본다. 반면에 인도는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인도는 여전히 국가주의 엘리트 스포츠에 별 관심을 가지지 않지만, 시민들이 상당한 흥분을 하게 만든 사건 하나가 일어났다. 니라즈 초쁘라(Neeraj Chopra)라는 투창 던지기 육상 선수가 인도 올림픽 사상 최초로 육상에서 금메달을 땄다. 1900년 파리 대회에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로 있을 때 노만 프릿차드(Norman Pritchard)라는 영국인이 개인 자격으로 인도 대표 선수로 육상 종목에 참가한 이래로, 지금까지 24번의 대회에 빠짐없이 참가하여 남자 필드하키에서만 여덟 차례의 금메달과 한 차례의 사격에서 금메달을 딴 일이 있었을 뿐이다. 초쁘라는 육군 소속의 선수인데, 북인도의 하리야나(Haryana) 출신이고, 그 지역이 거의 그렇듯 농민의 아들이다.

 

 

농민의 아들이라는 레토릭이 언론에 자주 등장하더니, 그만 적잖은 의미의 사고가 하나 터졌다. 누군가에 의해 #FarmersShineInOlympics#FarmersProtest 라는 해시태그가 트위터에 등장하면서 널리 퍼졌다. 그러더니, 금메달리스트 니라즈 초쁘라 이름으로 힌디 트윗이 아래와 같이 등장했다. 이를 번역하면, “만약 이 나라의 농민들이 정부의 탄압으로 농민들이 이렇게 고통을 받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금메달을 따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가 된다. 이 트윗은 많은 트위터들에 의해 스크린샷으로 삽시간에 공유되었다. 그러면서 니라즈 초쁘라가 농민들이 현재 진행하고 있는 신농장법(New Farm Act)에 대한 저항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런데 주간지 인디아 투데이()가짜뉴스 팀이 조사를 한 바에 따르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니라즈 초쁘라의 트위트 계정은 “@Neeraj_chopra1”. 누군가 사용한 “@neeraj_chopra_”가짜 계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가짜 계정 “@neeraj_chopra_” 는 이미 24천의 팔로워를 갖게 되었고, 그들에 의해 그 가짜뉴스는 순식간에 전국적으로 퍼지게 되었다.

 

인도 언론의 팩트체크한 니라즈 초쁘라의 가짜 트위터.
인도 언론의 팩트체크한 니라즈 초쁘라의 가짜 트위터.

 

현재 인도는 신()농장법(New Farm Act) 도입을 두고 농민들의 강력한 저항이 전개되는 중이다.

인도 수상 나렌드라 모디는 2014년 집권 이래 완전한 신자유주의 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시장 친화적 경제 체계로 탈바꿈하기 위해 건국 이래 지금까지 인도 사회를 지탱해 온 여러 가지의 사회주의적 사회경제 정책을 폐지하는데 모든 역량을 쏟았다. 모디는 지난 2019년 총선에서 농민 소득을 2022년까지 2배로 늘려주겠다고 공약했으나 최근 그 약속 시기를 2년 늦췄다. 이에 농민들은 모디가 친기업, 친시장의 정책만 쓸 뿐, 농민들에 대해서는 적대적이라고 분노하면서 반정부 저항을 시작했다. 2020923일 집권 여당인 인도국민당(BJP)은 의회에서 세 가지 농업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다. 농민 생산의 교역과 상업에 관한 법안(Farmers’ Produce Trade and Commerce) 즉 생산 장려와 촉진에 관한 안, 농민(권한 부여 및 보호에 관한) 생산가 보장 및 농장 서비스 동의안(Empowerment and Protection Agreement of Price Assurance, Farm Services Act), 필수물품(개정)(Essential Commodities (Amendment) Act)의 셋이다. 이 모든 법안은 그동안 자유 시장 체계로부터 정부가 농민을 보호해 온 전통을 부정하고 농민들을 시장 질서 안에 강제로 내몰아서 농민들이 모두 다 죽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는 내용이라는 것이 농민들의 주장이다. 시위대는 특히 농민과 기업 간의 직거래를 허용하는 첫 번째 법안이다. 1960년대부터 인도 정부는 농민과 민간 기업 간의 직거래를 철저히 금지해 왔다. 농민은 정부가 감독하는 공공 매장으로 작물을 넘기고, ·소매업체는 그 매장에서 경매에 참여해 작물을 구매하는 체계였다. 당연히 정부가 작물별 최저 가격을 정해 농민들에게 최소 수입을 보장하려는 체계다. 이 체계가 무너지면 농민들은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가 없게 되고, 그래서 그들은 대규모 시위를 하는 것이다.

 

농민들의 저항은 법안들이 통과된 후 특히 농민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고, 대기업의 영향력이 큰 북인도의 뻔잡, 라자스탄, 하리야나 등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중이다. 그 저항은 수차례에 걸친 대규모의 상경 시위 등으로 지금까지 끊이지 않고 있다. 니라즈 초쁘라는 이 가운데 농민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으면서 델리와 바로 인접한 하리야나 주 출신이다. 그가 반정부 농민 운동에 어떤 입장을 가졌는지에 대해서는 알 바가 없다. 그리고 그에게 강요할 수도 없다.

농민들이 기업의 희생양으로 전락하여 지금보다 더 고통스러운 처지로 떨어지는 것은 막아야 한다. 그러나 누군가에 의해 이렇게 국민 영웅이 된 운동선수를 가짜로 소환하여 그들의 정당한 운동에 도움이 되게 하려는 행동은 지탄받아야 한다. 세상은 어차피 도덕의 싸움터가 아니다. 온갖 전술과 협잡이 난무하는 곳에서 살아남고 이기는 자가 강한 자가 되는 곳이다. 그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라도 이런 가짜뉴스를 이용해서는 안 된다. 가짜뉴스라는 허용될 수 없는 방식의 전술이 밝혀지면, 그 싸움을 하는 쪽이 도덕적 정당성을 잃고, 치명타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도 마찬가지지만, 사회운동은 주변의 지지 세력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그들에게 감동을 주는 행위다. 가짜 뉴스는 감동을 앗아가고, 혐오를 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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