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일회용품 줄이기 백지화... 1년 동안 뭘 했나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3.11.07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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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계도??... 집행은 언제

환경부는 7일 브리핑을 통해 오는 24일부터 시행 예정이었던 일회용품 줄이기 확대 시행 정책을 사실상 백지화하는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지구를 사랑하는 많은 분들이 개인컵과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며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에 동참하고 있는데요. 정부가 사실상 일회용품 줄이기를 포기했습니다. 뉴스톱이 분석해봤습니다.

◈왜 백지화?

우리는 일회용품 쓰지 말자는 이야기는 정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습니다. 나라가 쪼들리던 시절에는 자원·에너지 절약, 수입대체 효과 등의 이유로 일회용품을 쓰지 말자고 했습니다. 먹고 살만한 이후에는 환경 보호가 대세가 됐습니다. 플라스틱 빨대를 코에 꽂고 피를 흘리는 바다거북 처참한 사진도 일회용품 줄이기에 동기를 부여했습니다.

그런데 환경부는 일회용품 줄이기 정책을 백지화했습니다. 아직 우리사회가 충분한 준비와 사회적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는 게 첫번째 이유고요. 두번째는 일회용품 줄이는 효과에 비해 사회가 치러야 하는 비용이 너무 크고 그 비용 대부분을 소상공인과 자영업자가 짋어지게 된다. 이런 이유입니다. 환경부 임상준 차관은 브리핑에서 “원가상승/고물가/고금리에 어려운 경제상황으로 고통을 겪고 계시는 우리의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분들에게 지금의 이 규제로 또 하나의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것은 정부의 도리가 아닐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원래 시행하려던 건?

11월24일부터 시행하려고 했던 일회용품 줄이기 대책은 집단 급식소와 식품접객업소에서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 젓는 막대를 제공하면 10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하는 게 핵심이었습니다. 종합소매업, 제과점에서는 비닐봉투 또는 쇼핑백을 사용할 수 없게 됐구요. 스포츠 경기를 관람할 때 일회용 플라스틱 재질의 응원용품이 금지됐습니다. 대규모 점포의 우산 빗물받이용 비닐도 금지가 예정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환경부는 여러 이유를 대면서 과태료 부과를 백지화했습니다. 환경부는 “비닐봉투는 단속을 통한 과태료 부과보다는 대체품 사용을 생활문화로 정착시키는데 주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플라스틱 빨대는 계도기간을 연장하고 대체품 시장의 성장을 유도하겠다고 합니다. 계도 종료시점은 유엔 플라스틱 협약 등 국제 동향, 대체품 시장 상황을 고려하여 추후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현시점에선 사실상 무기한 단속 유예라고 볼 수 있죠. 종이컵은 일회용품 사용제한 대상품목에서 아예 제외시키기로 했습니다.

 

◈과태료 철회 배경은?

품목별로 살펴보자면, 비닐봉투는 장바구니, 생분해성 봉투, 종량제 봉투 등 대체품 사용이 안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환경부는 짚었습니다. 한국편의점산업협회에 따르면, 편의점 5개사가 2023년 상반기 중 사용한 봉투는 생분해성 봉투가 70%이며, 종량제 봉투 23.5%, 종이봉투 6.1%로 집계됐다고 합니다.

플라스틱 빨대는 사용이 금지된 이후 커피전문점은 주로 종이 빨대, 생분해성 빨대 등을 사용해왔는데요. 소비자는 종이 빨대가 음료 맛을 떨어뜨리고, 쉽게 눅눅해져 사용하기 불편하다는 불만을 제기합니다. 일부 사업자는 규정을 준수하기 위해 가격이 2.5배 이상 비싼 종이 빨대를 구비했지만, 고객의 불만을 들어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었다고 합니다.

종이컵은 사용이 금지되면서 음식점, 커피전문점 등 매장에서 다회용컵 세척을 위해 인력을 고용하거나 세척시설을 설치해야 하는 부담이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공간이 협소한 매장은 세척시설 설치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규제를 준수하는 것이 어렵다는 불만을 많이 제기했다고 하네요.

 

◈앞뒤가 맞지 않는 환경부?

환경단체들은 매우 반발하고 있습니다. 환경부의 해명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환경부는 비닐봉투 대신 장바구니와 종량제 봉투 사용을 정착하겠다며 현재 편의점 등에서 생분해 비닐 사용 비율이 높다는 이유를 들었는데요.

녹색연합은 “이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소재가 생분해든, 종이든 한번 사용하고 폐기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일회용품 규제의 핵심이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생분해 포장재 사용을 긍정적 변화로 판단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인데요. 생분해 포장재의 경우, 종량제봉투에 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수도권의 경우 종량제 봉투의 70%를 소각하고 있구요, 2030년에는 전국 매립지에 종량제봉투 직매립이 금지될 예정입니다. 생분해 플라스틱은 땅에 파묻혀야 분해돼서 흙으로 돌아가는 건데. 현재 이 생분해 플라스틱을 따로 수거해 처리하는 시설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 소각되는 실정이죠. 이렇기 때문에 생분해 비닐봉투가 일회용품의 대체재가 될 수 없는 것이구요.

플라스틱 빨대의 사용 허가도 잘못됐다고 지적합니다. 현재 국제사회는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국제협약을 논의 중인데요. 플라스틱 국제협약에서 중요하게 논의되는 부분은 플라스틱 생산을 줄이는 겁니다. 특히 불필요한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것이 핵심 내용입니다. 이 불필요한 플라스틱은 대표적인 일회용품입니다. 일회용 식기, 빨대, 면봉, 접시, 젓는 막대, 비닐봉투 등인데요. 이미 유럽연합은 2019년 7월 ‘일회용 플라스틱에 대한 지침’을 채택해 2021년 7월부터 유럽연합 회원국 내에서는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먹고 갈래요’에도 종이컵 주나?

커피숍 안에서 마시는 음료를 머그컵에 주는 것은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한 장면이 됐습니다. 일각에선 이게 다시 종이컵으로 돌아가는 거냐는 물음이 나옵니다. 규제가 있으면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 규제를 따르는 건데요. 종이컵 규제가 없어지면 경제논리에 따라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준비가 돼 있는 일부 매장은 손님이 종이컵을 달라고 요구하지 않는 한 머그컵에 음료를 줄 테고요. 사장님 혼자 일하는 카페에선 설거지 부담 때문에 종이컵에 음료를 주기 쉽지 않을까 싶습니다.

2019년 환경부의 자료에 따르면 종이컵이 연간 248억개가 사용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녹색연합은 “이런데도 규제를 안 하겠다는 것은 직무 유기다. 일회용품 규제의 핵심은 종이컵이 플라스틱이 아니라서 괜찮다가 아니라, 한 번 사용하고 버려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플라스틱 규제의 효과는?

비닐봉투와 쇼핑백은 규제 이후 사용량이 많이 줄었습니다. 지난 3월 환경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대형마트, 제과점 비닐봉투·쇼핑백 사용량은 2017년 3810톤에서 2022년 660톤으로 크게 줄었습니다. 이는 2019년 1월 1일부터 일회용 비닐봉투 사용 금지를 위한 자원재활용법 시행규칙이 개정됐기 때문입니다.

매장 내 일회용 컵 사용금지의 효과도 명확하다고 합니다. 환경부의 자발적 협약 결과 자료에 따르면 연도별 개인 텀블러 및 다회용 컵 사용 비율은 2018년 44.3%에 불과했지만 2019년에는 93.9%까지 급증했습니다. 이는 2018년 8월부터 매장내 일회용컵 사용 규제가 적용됐기 때문으로 녹색연합은 분석했습니다. 개인의 실천과 카페의 선택이라는 자율 감량보다 사용규제라는 제도가 일회용품 사용 저감에 더 큰 효과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출처: 환경부
출처: 환경부

◈지난 1년 정부는 뭘 했나?

환경단체들은 반발하는 게 당연할 것 같은데요. 사실 이 정책은 1년 전부터 예고된 겁니다. 이미 시행이 된 것이고, 1년 동안은 계도기간으로 정한 것인데요. 그렇다면 정부는 도대체 1년 동안 뭘 했을까요?

지난해 환경부 보도자료(윗그림 참조)를 보겠습니다. <비닐봉투, 플라스틱 빨대‧젓는 막대 및 종이컵 사용금지에 대해서는 1년 동안 참여형 계도기간을 운영한다. 이번 계도는 그간의 방치형 계도와 달리 사업자의 감량 캠페인 참여를 독려하고 지원함으로써 자율 감량을 유도하는 적극적인 조치다.>라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그리고 <환경부는 지자체, 유역(지방)환경청, 한국환경공단 및 관련 민간단체 등과 함께 일회용품 사용이 최소화되도록 접객서비스 변화를 유도하는 ‘행동변화 유도형 감량’ 캠페인을 전개한다.> 이렇게 계획을 밝혔습니다. 계획은 세웠는데 제대로 실행이 안 된 것인지, 아니면 계획대로 되고 있는데 윗선에서 지시가 내려온 것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이게 법치주의 구현과는 굉장히 거리가 먼 행태입니다.

출처: 환경운동연합
출처: 환경운동연합

소상공인들이 힘들다는 말은 분명 거짓말은 아닙니다. 소상공인들의 힘든 사정도 반영해야 마땅합니다. 환경운동연합의 성명(윗 그림 참조)을 좀 가져와봤습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로 환경부는 제대로 된 플라스틱 정책을 단 하나도 내놓지 못했다. 그 이유의 대부분은 ‘소상공인’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계도기간을 두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동안 소상공인과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환경부는 당장 못하겠다며 계도기간을 두고, 계도기간 동안 소상공인과 소비자가 만족할 수 있는 정책을 내놓지도 않았다. 그리고 또 다시 규제를 철회했다. 환경부가 플라스틱 폐기물 감축을 위해 보여준 모습은 “유예·계도·철회” 뿐이다.

정책을 시행하는 것과 소상공인과 같은 이해관계자에 대한 지원과 조율은 환경부에서 해야할 일이다. 다회용기 세척 시스템 마련, 다회용기 사용 업체 지원, 친환경 용기·식기 생산 업체 지원 등 1회용 플라스틱 사용 감축을 위해 환경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계도기간 동안 단 하나도 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서울시를 비롯한 여러 지자체들은 소상공인 지원과 협력을 통해 1회용품을 줄여나가겠다고 발표해왔다. 그런데 중앙부처인 환경부는 규제를 포기했다. 정책 시행도, 이해관계자 조율도 그 어느것 하나 하지 못했다.

환경부는 이 말을 뼈아프게 새겨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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