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파업이 드러낸 민낯② “있는데 없습니다”-PA간호사

  • 기자명 송영훈 기자
  • 기사승인 2024.03.11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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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일부 업무 대신하지만 관련 법 규정 없어
정부 적극 활용 방침, 간호법 제정까지 이어질까

의대정원 증원을 반대하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장기화하면서 그동안 가려졌던 의료계 문제가 하나둘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의사 수’와 ‘필수 의료’, ‘지역 의료’, ‘응급 의료’ 등 꾸준히 제기됐던 문제 외에, ‘대형 병원의 과도한 전공의 의존’과 ‘PA간호사’ 문제가 이번 사태로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뉴스톱이 2회에 걸쳐 짚어봤습니다. 두 번째는 ‘존재하지만 없어야 하는 PA간호사’입니다.

YTN방송화면 갈무리
YTN방송화면 갈무리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으로 인한 의료 공백이 길어지자 2월 27일 정부는 ‘보건의료기본법’ 제44조에 근거해 PA 시범사업을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동안 법적 지위를 보장받지 못한 채, 사실상 불법으로 의사 업무 일부를 맡아온 간호사들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해, 고소·고발 등 법적 위험을 줄여주겠단 취지였습니다.

‘전담간호사’, ‘임상간호사’, ‘진료보조간호사’ 등으로 불리는 ‘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는 의료현장에서 의사를 지원하는 인력으로 그동안 암묵적으로 의사 업무의 일부를 대신해 왔습니다. 수술, 처치, 처방, 환자 동의서 작성 등 전공의와 비슷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 영국, 캐나다 등에서는 PA 면허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법적인 근거가 없습니다. 이 때문에 2020년 전공의 파업 당시에는 일부 간호사들이 의사 업무를 대신했다가 전공의들로부터 무면허 의료행위로 고발당하기도 했습니다.

병원간호사회가 매년 회원병원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병원간호인력 배치현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 2010년 1009명이던 PA 간호사는 이후 꾸준히 증가해 2021년 5619명을 기록했습니다. 전공의법 시행으로 전공의 주당 근무시간이 100시간에서 80시간으로 줄어들면서 급격히 증가했단 분석입니다. 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현재 전국 의료기관에서 활동하는 PA 간호사를 1만 명 이상으로 추정했습니다.

YTN 방송화면 갈무리
YTN 방송화면 갈무리

이번 정부 계획안에 따르면, 각 병원장이 내부 위원회를 구성하고, 간호부서장과 협의해 간호사 업무 범위를 정할 수 있습니다. 다만 대법원 판례로 금지된 프로포폴에 의한 수면 마취, 척수 마취 시술 등은 간호사 업무 범위에 포함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간호사 업무 범위에 대한 명확한 지침 결정이 미뤄지거나 전달되지 않는 등 의료계 현장의 혼란이 지속되자, 보건복지부는 지난 7일 일선 의료기관에 배포한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보완 지침’을 통해 간호사 위임 불가능 업무 및 간호사의 진료지원 업무범위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습니다.

보완 지침에서는 건강 문제 확인·감별, 검사, 치료·처치 등 총 10개 분야에서 98개 진료지원 행위를 구분해 간호사들이 할 수 있는 업무를 정했습니다. 제시한 업무 중 9개를 제외하고 모두 위임가능업무로 분류했는데, 특히 처방 및 기록과 관련해 진료기록 초안, 검사 및 판독 의뢰 초안, 협진 의뢰 초안, 진단서 초안 작성 등도 PA 간호사에게 위임할 수 있는 업무로 분류했습니다. 또한 PA간호사도 전문간호사, 전담간호사, 일반 간호사로 나눠 각각 위임 가능 업무에 차등을 두었습니다.

보건복지부 자료 갈무리
보건복지부 자료 갈무리

정부는 PA 간호사를 적극 활용할 방침이라지만, 지난 해 5월 간호사 업무 영역을 명확하게 하기 위한 간호법 제정을 무산시킨 바 있습니다.

의료법 제2조는 간호사의 임무를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그동안 간호사들은 실질적으로 의사 업무를 상당부분 수행하면서도 법적, 제도적 지위를 인정받을 수 없었습니다. 간호법 제정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간호계의 숙원사업이었지만, 대선공약 여부 논란만 남기고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통해 좌절됐습니다.

하지만 복지부가 이번 시범사업 지침에서 가칭으로 ‘전담간호사’를 언급하고, 향후 시범사업을 모니터링해 제도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히자, PA 간호사 합법화에 시동이 걸렸다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6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며 “전문의 중심의 인력 구조로 바꿔나가는 한편, 숙련된 진료지원(PA) 간호사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해 근본적인 의료전달체계 개편도 함께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간호법을 반대해 왔던 의사단체는 “자격없는 PA의 불법 의료행위가 양성화되면 의료 현장은 불법과 저질 의료가 판치는 곳으로 변질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반면, 간호계는 환영 의사를 밝히며,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하기 위한 ‘간호법’ 제정을 요구했습니다. 물론 간호법 제정은 국회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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