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비례후보 탈락 임태훈...병역기피? 병역거부?

  • 기자명 송영훈 기자
  • 기사승인 2024.03.18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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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인권위 제출 보고서·국제엠네스티, ‘병역거부’로 구분

더불어민주당 주도 총선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이 연합정치시민회의(시민사회) 몫 비례후보로 추천됐던 임태훈 전 군인권센터 소장을 ‘병역 기피’ 사유로 공천에서 탈락시켰습니다. 임 전 소장과 시민사회 측은 ‘병역 기피’가 아닌 ‘병역 거부’라며 반발했습니다. 뉴스톱이 확인했습니다.

군 인권 활동가인 임태훈 전 소장은 지난 10일 국민후보 공개 오디션을 통해 시민사회의 비례대표 후보로 추천됐습니다. 2009년 군인권센터를 설립해 활동하며 폐쇄적인 군 조직 안에서 벌어지는 부조리와 사각지대에 방치된 장병 인권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부각시켜온 점이 돋보였다는 평가였습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연합은 “임 전 소장의 공천 심사를 진행한 결과, 부적격 사유 중 ‘병역 기피’에 해당된다”고 밝혔습니다. 시민사회 측은 지난 15일 컷오프(공천 배제)가 확정됐던 임 전 소장을 다시 비례대표 후보로 추천했지만, 더불어민주연합은 부적격 결정에는 문제가 없었다며 철회를 거부했습니다.

 

임 전 소장 2003년 7월 22일 '양심적 병역 거부' 선언

임 전 소장은 1996년부터 동성애자 인권운동을 시작해 ‘동성애자 인권연대’를 창립했고, 이후 동성애 차별이 부당하다는 것을 호소하는 활동을 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설립을 위한 입법활동, 차별금지법의 근간인 차별금지사유를 확장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임 전 소장은 2003년 7월 22일 동성애를 정신질환으로 분류하는 징병검사 규칙에 저항하기 위해 양심적 병역 거부를 선언했습니다. 2004년 2월 15일 공개된 ‘제60차 유엔 인권위원회 제출 NGO 공동보고서 : 한국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현황과 인권문제’ 보고서는 임 전 소장을 “반전평화주의, 성적소수자에 대해 정신질환자로 판정하는 징병당국의 차별 반대”의 사유로 ‘비종교적 병역거부자’로 분류했습니다.

보고서 갈무리
보고서 갈무리

이 사건으로 임 전 소장은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아 수감됐고, 수감기간 동안 세계 최대 인권단체인 국제엠네스티에서 양심수로 지정받았습니다. 당시 국제앰네스티는 그의 석방을 촉구하는 성명과 함께 양심수로 지정하여 석방을 위한 캠페인을 전 세계적으로 전개했습니다.

임 전 소장은 2018년 3월 22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동성애자로서 성소수자 인권 운동을 하던 상황에서 군의 상존하는 차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군내 동성애를 형사처벌토록 한 군형법 92조 6이 없었다면 입대했을 거다. 이성애자 군인들의 성관계는 처벌하지 않으면서 동성애자의 성관계는 처벌하는 건 명백한 차별이다. 국가의 차별적 형사정책에 저항하는 의미에서 병역 거부를 택한 것이다.”라고 밝혔습니다.

이와 관련해, 2011년 12월 캐나다 정부가 한국의 병역거부자를 난민으로 인정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병역을 거부하는 소수자에 대한 처벌 문제가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캐나다 이민·난민심사위원회(IRB)는 2009년 7월 평화주의 신념과 동성애 성적 지향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씨의 난민지위 신청에 대해 “신청인이 고국으로 돌아가면 징집돼 군복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학대를 당할 가능성이 심각하다”고 판결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특히 IRB는 이 같은 결정의 근거로 한국 군대 내의 학대 사례와 동성애자 인권침해 사례를 구체적으로 들었습니다.

KBS 방송화면 갈무리
KBS 방송화면 갈무리

헌번재판소 2018년 병역거부 관련 판결도 주목

시민사회 측은 지난 2018년 헌법재판소(헌재)가 종교적 신념 등에 따른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을 헌법불합치로 판단한 것을 계기로 현재 대체복무가 일부 시행 중인 만큼 임 전 소장에 부적격 결정을 내린 것은 부당하다고도 했습니다.

실제로 헌재는 2018년 6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안을 마련하지 않은 병역법에 대해 2019년 12월31일까지 대체복무제를 포함하는 내용으로 개정하라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바 있습니다.

당시 헌재는 대체복무를 인정하지 않은 병역법 5조 1항(병역의 종류)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지만 병역거부자의 처벌을 규정한 병역법 88조 1항에 대해선 합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병역 거부에 따른 처벌의 불가피성은 인정하지만, 처벌 근거에 미흡한 부분이 있다고 판단한 것인데, 헌재가 병역법 5조 1항과 88조 1항을 전부 위헌 결정할 경우 현재 병역거부로 구속된 모든 수감자를 석방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임 전 소장은 당시 YTN라디오 인터뷰에서 “병역을 거부한 사람과 병역을 기피한 사람이 구분 없이 석방될 수 있다”고 지적하며, “이렇게 석방될 경우 다 재심사유가 돼 국가에 막대한 세금을 들여 돈(피해보상액)을 지급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런 것을 고려해 (헌재가) 병역법 88조와 5조 1항을 분리해서 각각 법원과 의회를 향해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YTN 방송화면 갈무리
YTN 방송화면 갈무리

한편, 더불어민주연합의 이번 결정에 대해, 국민후보추천 심사위 간사인 주제준 위원은 “이재명 대표조차 대체복무를 도입하고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발표했다”며, “이제 와서 양심적 병역거부가 병역기피로 규정되는 것은 국제적 인권 기준, 헌법적 판단, 시대 정신에 맞지 않다”고 비판했습니다.

또, 국제앰네스티도 15일 양심적 병역 거부자인 임태훈 전 군인권센터 소장의 컷오프(공천 배제)에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국제앰네스티는 이날 성명을 내고 “양심적 병역거부 사실이 후보자 부적격 사유로 규정되고 이에 따라 피선거권을 제한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며 “이는 병역거부자에 대한 인권침해”라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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