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입술에선 '음악'과 '사랑'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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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입술에선 '음악'과 '사랑'이 흐른다
  • 홍상현
  • 승인 2021.06.22 1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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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현의 인터뷰]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초청작 <굿바이, 입술> 시오타 아키히코 감독
애초에 제작사가 잡고 있던 「굿바이, 입술」의 기획방향은 ‘고마츠 나나와 카도키와 무기 두 배우가 출연하는 러브스토리’라는 대단히 추상적인 내용이었지만 시오타 아키히코 감독이 제작에 합류하면서 오리지널 스토리가 따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주)엔케이컨텐츠
애초에 제작사가 잡고 있던 「굿바이, 입술」의 기획방향은 ‘고마츠 나나와 카도키와 무기 두 배우가 출연하는 러브스토리’라는 대단히 추상적인 내용이었지만, 시오타 아키히코 감독이 제작에 합류하면서 오리지널 스토리가 따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주)엔케이컨텐츠

딱 한번 올라가 본 적이 있다. 입장료를 낸 관객이 모여 있던 객석 앞 무대에, 노래를 부르러.

어릴 적 친구들과 밴드를 했다. 지금은 ‘그냥 샐러리맨 아저씨’지만, 당시만 해도 우리들 중에 드문 수완꾼이던 친구가 사촌형을 졸라 소개받은 주부(中部)지방 소극장의 오프닝퍼포먼스였다.

얼토당토않게 보컬을 맡은 이유는 돌아보면 헛웃음이 나는 두 가지. 해외거주 경험으로 영어가사 발음이 자연스러운데 마침 음치가 아니었다는 것. 그래도 미니밴의 시동을 걸 때의 마음만은 전도유망한 신예 밴드였다. 차에 붙어있던 “OO수산” 상호가 밴드 이름으로 보일까 신경 쓰일 만큼. 결국 ‘바람잡이는 바람잡이일 뿐’이라는 세상사 진리를 실감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지만. 그래도 당연한 일상이 추억이 되어버린 요즘 같아선 아무런 기록도 남겨놓지 못한 게 못내 아쉬운 내 인생의 ‘청춘로드무비’다.

인터뷰 원고를 정리하며 MP3 파일에 생생히 보존돼있던 시오타 아키히코 감독의 음성을 들으니 ‘다시 불러주시면 꼭 참석해서 한국 관객 여러분 옆자리에 앉아 영화를 보고 싶다’던 그의 선한 미소가 떠올랐다. (C)2019 TIFF
인터뷰 원고를 정리하며 MP3 파일에 생생히 보존돼있던 시오타 아키히코 감독의 음성을 들으니 ‘다시 불러주시면 꼭 참석해서 한국 관객 여러분 옆자리에 앉아 영화를 보고 싶다’던 그의 선한 미소가 떠올랐다. (C)2019 TIFF

평론가ㆍ시나리오작가이자 저팬 뉴시네마를 리드하는 릿쿄 누벨바그(Rikkyo Nouvelle Vague)의 주축으로, 한국의 3대 국제영화제(전주ㆍ부천ㆍ부산 순)를 섭렵하며 평단과 관객에게 호평 받아온 오늘의 주인공, 시오타 아키히코 감독과의 만남을 계획한 것도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되는 <굿바이, 입술>의 시놉시스를 읽다 그 시절의 ‘청춘로드무비’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버블경제가 붕괴된 도쿄와 IMF 사태가 엄습한 서울의 살풍경 속에서도, 풋풋한 초록색으로 가득했던 20대의 삽화.

“운명처럼 서로를 알아본 후, 인디 밴드 ‘하루레오’를 결성한 ‘하루(카도와키 무기 분)’와 ‘레오(고마츠 나나 분)’ 그리고 그들의 음악에 빠져든 매니저 ‘시마(나리타 료 분)’. 언제나 함께일 것 같았지만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게 된 세 사람은 첫 전국 투어가 끝나면 ‘하루레오’를 해체하기로 결정한다. 마지막 콘서트가 끝나면, 우리는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시오타 감독과의 만남이 쉽지는 않았다. 영화가 현지 개봉 2개월 뒤 제15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초청되기는 했지만 게스트 방한은 없었다. 그래서 《뉴스톱》 특별취재팀([모두를 위해 '후쿠시마 방사능 지도'를 그리다] 시리즈)의 일원으로 출장을 가다 도쿄국제영화제(같은 해 이 영화제에도 초청되었다)에 들러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듬해 가급적 빠른 시기’로 예정돼있던 배급사의 국내개봉 스케줄에 협조하느라 기사발행은 미뤘다.

그리고 코로나 19가 세계를 덮치면서 모든 것이 뒤죽박죽되었다. “8월 27일, 영원히 빛날 순간을 노래할게”라는 포스터 문구가 무색하게도 <굿바이, 입술>은 상영관 하나 잡지 못한 채 소리 소문 없이 온라인에서 공개되기에 이른다.

무려 2년의 시간을 가로지르는 우여곡절 끝에 독자와 만나게 된 인터뷰를 지금부터 풀어놔 보자.

(※ 기사 타이틀 <굿바이, 입술>을 클릭하면 영화에 접속할 수 있습니다)

2018년 7월 14일. 통기타 듀오 ‘하루레오’ 결성 이후 첫 전국 투어에 나서는 세 사람. 한없이 밝아 보이는 표정이지만, 마지막 콘서트를 마치면 팀을 해산하고 각자의 길을 가기로 약속이 되어있다. (주)엔케이컨텐츠
2018년 7월 14일. 통기타 듀오 ‘하루레오’ 결성 이후 첫 전국 투어에 나서는 세 사람. 한없이 밝아 보이는 표정이지만, 마지막 콘서트를 마치면 팀을 해산하고 각자의 길을 가기로 약속했다. (주)엔케이컨텐츠

홍상현

발표하신 작품이 전주국제영화제(<깁스 걸>),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환생>), 부산국제영화제(<바람에 젖은 여자>)를 거쳐, 드디어 <굿바이, 입술>이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까지 초청되셨습니다. 한국의 국제영화제와 정말 깊은 인연을 맺고 계신데요.

시오타 아키히코

그렇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다만, 국제영화제 출품 업무를 배급사의 해외세일즈팀이 담당하다 보니 작품이 영화제에 초청되었어도 정작 저는 다른 작품의 현장에 있거나 한 경우가 많았어요.

어디서든 차기작으로도 다시 불러주신다면 꼭 참석해서 한국 관객 여러분의 옆자리에 앉아 영화를 보고 싶습니다.

 

홍상현

“홍상현의 인터뷰”를 통해 뵙는 분들께 매번 드리는 질문인데요. (웃음) 한국영화의 인연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시오타 아키히코

감독인 동시에 평론가로 글도 쓰고, 또 영화미학교라는 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만, 지금껏 접해 본 영화 가운데 가장 큰 충격을 주었던 게 김기영 감독의 작품들이었습니다. <하녀>를 비롯해 비슷한 시기 발표하신 작품들이 당시 일본에서도 소개된 일이 있는데, 젊은 시절에 엄청나게 강렬한 인상을 받았어요.

그밖에 저(1961년 생)와 비슷한 연배인 감독들의 눈부신 활약에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뛰어난 분들이 워낙 많으시잖아요.

시오타 아키히코 감독은 모든 배우는 누구나 최고의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으며, 대개 그러한 신뢰는 성공적인 결과로 마무리되었다. 이는 환갑을 앞둔 그가 도전한 청춘로드무비 「굿바이, 입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주)엔케이컨텐츠
시오타 아키히코 감독은 모든 배우는 누구나 최고의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으며, 이러한 신뢰는 대개 성공적인 결과로 마무리되었다. 이는 환갑을 앞둔 그가 도전한 청춘로드무비 「굿바이, 입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주)엔케이컨텐츠

홍상현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요?

먼저, 감독님의 필모그래피에 드러나는 경향에 관한 건데요. 작품의 폭이 정말 넓으십니다. 장편극영화 데뷔작(<달빛 속삭임>)은 멜로였고요. 한국의 국제영화제에 처음 초청되신 작품(<깁스 걸>)이 스릴러였는가 하면, 판타지(<환생>, <도로로>)로 인기를 모으셨는데요.

시오타 아키히코

지금 주신 질문은 제가 희망하는 필모그래피의 이상적인 형태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설명을 드리면, 일단은 먼저 제가 직접 쓴 오리지널 시나리오 작품을 찍는 겁니다. 예산하고 무관하게 평소 추구하던 방향의 작업을 자유롭게 진행해 보는 거예요. 다음에는 누군가 의뢰하는 기획을 맡아서 전혀 다른 작품을 만들고요. 역시 메이저 스튜디오의 프로젝트든 독립ㆍ저예산 프로젝트든 관계없이 말입니다. 이렇듯 제 오리지널 작품과 남이 의뢰한 기획을 번갈아가며 진행해 가는 게 제가 원하는 방향이에요. 쉽지는 않지만요. (웃음)

 

홍상현

대단히 독특한 형태네요. (웃음) 단순히 ‘팔리는, 혹은 산업적 수요가 있는 영화로 유명세를 얻고 나서 하고 싶었던 작품을 한다’는 것과도 거리가 있어 보이고.

시오타 아키히코

그렇습니다. (웃음)

전자의 방향을 유지하면 작가적 이미지가 선명해지기는 하는데, 요즘 여간한 영화감독들이 한 다섯 편 정도만 찍고 나면 보통 할 일이 없어지거든요. 국제영화제에서 호평 받을 수준의 영화를 네다섯 편정도 만들면 어느 시점에서부터인가 동어반복을 하게 되더라고요.

정기적으로 다른 사람이 제안하는 기획도 맡아서 영화를 찍다 보면 자신이 미처 염두에 두지 못했던 ‘의식의 서랍’이 열립니다. 전혀 다른 영화를 만들게 되니 작가적 이미지를 손상시키거나 잃어버리게 될 위험성도 감소하고요. 그밖에, 이전까지 교류가 없었던 ‘전혀 다른 누군가’의 발상을 접해봄으로써 진정 새롭게 시도하고 싶었던 걸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실력을 연마한다는 차원에서도 이런 식으로 활동을 해 나가고 싶어요. 물론 어디까지나 제 희망사항일 뿐이고 이상과 현실의 차이야 존재하겠죠. (웃음)

시간적 배경은 분명 2018년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풍겨나는 1960ㆍ70년대의 분위기는 「굿바이, 입술」에 매력을 더해주는 요소로 작용한다. 시오타 아키히코 감독은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반 사이 뉴시네마 시대의 분위기를 의식했다고 한다. (주)엔케이컨텐츠
시간적 배경은 분명 2018년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풍겨나는 1960ㆍ70년대의 분위기는 「굿바이, 입술」에 매력을 더해주는 요소로 작용한다. 시오타 아키히코 감독은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반 사이 아메리칸 뉴시네마 시대의 분위기를 의식했다고 한다. (주)엔케이컨텐츠

홍상현

다음은 캐스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낭뜨 3대륙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해충>의 미야자키 아오이 배우부터 <환생>의 다케우치 유코ㆍ쿠사나기 츠요시(초난강) 배우, 최대 흥행작 <도로로>의 시바사키 코우ㆍ츠마부키 사토시 배우, 그리고 이번 <굿바이, 입술>의 고마츠 나나ㆍ카도와키 무기ㆍ나리타 료 배우에 이르기까지. 늘 당대의 톱클래스 배우들과 하시는데요. 주목할 만 한 사실은 이들이 하나같이 감독의 작품에 출연하기 이전과 조금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는 점이에요.

시오타 아키히코

저는 늘 배우의 잠재력을 가능한 한 끌어내서 매혹적으로 보이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합니다. 훌륭한 연기로 유명한 배우들이 캐스팅되면 현장이 즐거워지기도 하고요.

다만, 예컨대 큰 역할부터 작은 역할까지 한 스무 명 정도의 배우가 한 편의 영화에 나온다고 가정할 때, 그들 모두를 제 선택에 따라 통제할 수는 없잖아요. 영화의 산업적 특성상 제가 원하지 않은 배우도 얼마든지 캐스팅될 수 있거든요. 물론 그렇다고 방금 전 예로 들었던 기획에 관한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반드시 제 기호에 따라 캐스트가 구성되어야 한다는 말씀도 아닙니다. 제가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이미지랑은 달랐지만 함께하게 되었던 배우가 대단히 훌륭한 결과를 내었던 사례도 많으니까.

 

홍상현

일단 ‘배우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신뢰’가 중요하다는 말씀처럼 들리는데요.

시오타 아키히코

그렇죠. 그런 의미에서, 모든 배우는 누구나 최고의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이건 아주 중요한 이야기인데요. 설령 이전의 필모그래피에서 보여준 모습이 썩 만족스럽지 않았더라도 저와 함께하면서 멋진 연기를 보여줄 수 있을 거라는 신뢰를 잃지 말아야 하다는 거예요. 신기하게도 이런 마음가짐으로 작업에 임하면 실패하는 적이 없더라고요.

독특한 이미지에 폭넓은 캐릭터를 소화하는 발군의 연기력으로 유명한 카도와키 무기 배우(왼쪽)는 「굿바이, 입술」에서 예측불허인 ‘레오(고마츠 나나 분)’와 대조적인 성격인 한편, 말하기 어려운 사연을 간직한 ‘하루’로 분해 드라마의 흐름을 주도한다. (주)엔케이컨텐츠
독특한 이미지에 폭넓은 캐릭터를 소화하는 발군의 연기력으로 유명한 카도와키 무기 배우(왼쪽)는 「굿바이, 입술」에서 예측불허인 ‘레오(고마츠 나나 분)’와 대조적인 성격인 한편, 말하기 어려운 사연을 간직한 ‘하루’로 분해 드라마의 흐름을 주도한다. (주)엔케이컨텐츠

홍상현

하긴. 말씀하신 내용은 현재까지의 결과를 통해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죠. 

시오타 아키히코

아마 제 촬영장에 다른 감독이나 평론가들이 찾아온다 하더라도 제가 배우에게 특별한 디렉션을 하는 모습을 보실 수는 없을 겁니다. 그냥 ‘영화를 찍나 보다’ 하겠지요.

하지만 저는 촬영장에서 정말 거짓말처럼 평소와 다른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들을 많이 봅니다. 이 대목에서 작용하는 가장 큰 요소가 바로 ‘신뢰’라는 거지요. 그 배우에 대한 사전정보나 평판과 무관하게 일단 ‘당신은 반드시 좋은 연기를 보여주실 거라 믿으니 잘 부탁드린다’는 자세로 배우를 맞는 겁니다. 그러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타납니다.

 

홍상현

역시 최대의 디렉션은 ‘믿음’이군요. (웃음)

시오타 아키히코

맞습니다. (웃음) 이런 신뢰가 없다면 어떨지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요? 누구도 원하지 않는 결과를 내기 위해서 몸을 던지는 배우는 없을 테니까요.

 

홍상현

당대 영화계의 새로운 흐름을 상징하는 인물 중 한분이셨던 감독님도 어느새 환갑을 앞두고 계신데요. 50대 마지막에 고른 작품이 청춘 로드무비인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시오타 아키히코

그러게요. 언제 이렇게 세월이 흘렀담? (웃음)

애초에 제작사가 잡고 있던 기획 방향은 ‘고마츠 나나와 카도와키 무기, 두 배우가 출연하는 러브스토리’라는 대단히 추상적인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다 제가 감독으로 합류하면서 오리지널 스토리를 따로 만들었죠.

관건은 두 여성을 중심으로 하는 내러티브를 어떻게 끌어가면 좋겠냐는 거였는데, 일단 이 두 인물을 기타 듀오로 설정하고, 그 사이에 남성인 로드매니저를 하나 끼워 넣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기에 다시 로드무비라는 특성을 가미하고요.

물론 환갑을 앞둔 남성 감독이, 두 명의 여성이 주인공인 청춘영화를 찍는다는 점을 불안해하시던 분들도 없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결과를 보시고 칭찬해주신 젊은 관객 분들이 계셔서 안심했습니다. (웃음)

WHO의 팬데믹 선언 후 한 달이 채 안 되던 시점에 개봉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관객들에게 이례적인 사랑을 받아 화제였던 「사랑의 뭘까」의 나리타 료 배우는 「굿바이, 입술」에서 청춘영화의 홍일점ㆍ청일점 캐릭터가 보여주기 쉬운 전형성에서 벗어난 모습으로 시선을 끈다. (주)엔케이컨텐츠
WHO의 팬데믹 선언 후 한 달이 채 안 되던 시점에 개봉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관객들에게 이례적인 사랑을 받아 화제였던 「사랑이 뭘까」의 나리타 료 배우는 「굿바이, 입술」에서 청춘영화의 홍일점ㆍ청일점 캐릭터가 보여주기 쉬운 전형성에서 벗어난 모습으로 시선을 끈다. (주)엔케이컨텐츠

홍상현

<굿바이, 입술>을 보는 내내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었는데요.

시간적 배경이 2018년임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음에도 어딘가 모르게 1960~70년대의 분위기가 느껴진다는 점이었습니다.

시오타 아키히코

네. 정확하게는 1960년대 말쯤의 분위기입니다. 우드스톡페스티벌이 등장한 이후일까요.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반 사이, 그러니까 아메리칸 뉴시네마 시대의 분위기를 의식했어요. 당시 제가 열 살 전후이다 보니 당시 보았던 작품들이 하나같이 대단히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거든요.

여기에 영화사적인 설명을 덧붙이자면, 1970년대 미국영화는 베트남전쟁과 일련의 사건으로 상징되는 좌절의 시간을 그리는 사례가 많습니다. 좌절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제가 보기에 이런 ‘희망 없는 사회에서 어떻게 희망을 찾아나갈 수 있을까’하는 분위기는 지금 우리 사회와도 묘하게 맞닿아 있는 지점이 있거든요.

무척 아이러니하죠. 제가 좋아하던 오래된 영화들의 정서가 1990년대 이후 일본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정체감과 이어져있다는 게.

 

홍상현

그럼 이제 좀 더 깊은 이야기로 들어가 볼까요?

일단 한국 관객들 사이에 압도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계신 고마츠 배우에 관한 이야기부터.

<굿바이, 입술>에서 고마츠 배우는 하루와 싸우고 ‘잠수를 타’거나, 리포터가 거슬리는 말들을 늘어놓는다고 생방송 중에 벌떡 일어나 자리를 떠버리는, 그야말로 ‘럭비공 같은 캐릭터’를 성공적으로 소화해내고 있습니다.

시오타 아키히코

작품을 통해서 함께한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고마츠 배우는 제가 이전부터 대단히 좋아하는 연기자였습니다. 애초부터 그의 캐스팅을 전제로 했던 기획이라 시나리오상 배역도 고마츠 배우의 이미지를 참고해서 만들었고요.

그런데 참 재미있었던 건, 저는 그저 막연히 ‘이런 캐릭터를 연기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시나리오를 썼을 뿐인데, 막상 고마츠 배우가 촬영을 진행하면서 ‘인물특성이 저에 가까워서 연기하기가 수월하다’는 거예요. (웃음) 저는 일단 거기까지만 하고, 연기의 베리에이션은 고마츠 배우가 자유롭게 표현해낼 수 있도록 충분한 자율성을 부여했습니다. 지나치게 세세한 주문 없이 본인의 창의성에 맡기는 편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물론 결과는 충분히 만족스러웠습니다.

캐스팅될 당시만 해도 ‘노래는 절대 시키지 말아 달라’고 사정사정을 할 정도이던 고마츠 나나 배우는 시나리오를 읽어보더니 “이런 캐릭터라면 노래를 꼭 불러야 되겠네요”라며 열의를 보였다고. ㈜엔케이컨텐츠
캐스팅될 당시만 해도 ‘노래는 절대 시키지 말아 달라’고 사정사정을 할 정도이던 고마츠 나나 배우는 시나리오를 읽어보더니 “이런 캐릭터라면 노래를 꼭 불러야 되겠네요”라며 열의를 보였다고. ㈜엔케이컨텐츠

홍상현

독특한 이미지에 폭넓은 캐릭터를 소화하는 발군의 연기력으로 유명한 카도와키 배우의 캐스팅도 훌륭했습니다. <굿바이, 입술>에서는 고마츠 배우와 대조적인 성격인 한편, 말하기 어려운 사연을 간직한 인물로 분해 극의 흐름을 주도하는데요.

시오타 아키히코

카도와키 배우는 고마츠 배우와 대조적으로 연출자와 세밀하게 의논하면서 연기를 전개해 가는 타이프더라고요. 이전부터 감독이 무엇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 늘 고민하는 연기자라는 인상이었지만요.

그래서 촬영장에서도 고마츠 배우께는 비교적 자유 시간을 많이 드리고, 카도와키 배우와 자세한 이야기를 많이 주고받았습니다. 그렇다고 딱히 특별한 주문을 하지는 않았어요. 아니, 도리어 본인이 신경 쓰여 하는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드리면 다음번에는 스스로 좀 더 향상된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홍상현

WHO의 팬데믹 선언 후 한 달이 채 안 되던 시점에 개봉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관객들에게 이례적인 사랑을 받아 화제였던 <사랑이 뭘까>의 나리타 배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청춘영화의 홍일점ㆍ청일점 캐릭터가 보여주기 쉬운 전형성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이 좋았는데요.

시오타 아키히코

말씀하신 바로 그 부분에 나리타 배우가 분한 ‘시마’라는 캐릭터의 본질이 담겨있습니다.

흔히 갖는 편견ㆍ선입견에 따른다면 두 여성 사이에 한 남성이 끼어들어 기존의 관계를 망가뜨리는 스토리가 될 것 같지만, <굿바이, 입술>의 시마는 끝까지 자기 자리를 지키고 인물들과의 거리를 유지하거든요.

잠시 갈등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내 금이 가려던 두 캐릭터 사이에서 접착제와 같은 역할을 하지요. 물론 그래서 힘들어하는 모습도 볼 수 있지만, 이 또한 영화를 보시는 재미일 거라 생각했어요. (웃음)

기타 연주가 거의 처음이었던 고마츠 나나 배우와 카도와키 무기 배우는 「굿바이, 입술」의 2ㆍ3개월 간 트레이닝을 받고, 결국 극중 듀오인 ‘하루레오’의 이름으로 음반까지 내는 재능을 보여주었다. (주)엔케이컨텐츠
기타 연주가 거의 처음이었던 고마츠 나나 배우와 카도와키 무기 배우는 「굿바이, 입술」의 촬영을 위해 2ㆍ3개월 간 트레이닝을 받고, 결국 극중 듀오인 ‘하루레오’의 이름으로 음반까지 내는 재능을 보여주었다. (주)엔케이컨텐츠

홍상현

의도하신 바가 적중했네요. (웃음)

‘접착제’ 이야기가 나온 김에 말씀드리면, 우리 말 속담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게 있습니다. 제 아무리 당대 최고의 배우들을 캐스팅하더라도 그들 사이의 케미스트리를 이끌어내지 못할 경우, 작품이 망가져버리는 케이스도 허다하잖아요.

그러나 <굿바이, 입술>의 경우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순간, 세 배우가 보여준 ‘케미스트리의 성취’에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오타 아키히코

대단히 감사합니다! (웃음)

말씀처럼 <굿바이, 입술>은 고마츠ㆍ카도와키ㆍ나리타, 세 배우의 케미스트리에 성패가 걸려있는 작품인데, 조금 엉뚱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저는 그 점에선 제작 초기 단계부터 전혀 걱정이 없었어요.

일단 세 사람에게 아주 명확한 공통점이 있었거든요. 영화를 좋아한다는 거. 상황만 허락한다면 영화 일만 하고 싶어 할 정도로 말입니다.

무엇보다 촬영 현장에 머물러 있는 것 자체를 좋아하고, 그렇다 보니 본인들뿐만 아니라 스태프들과의 관계도 대단히 화기애애했습니다. 제작일정을 진행하면서 이것 만큼 도움이 되는 게 없거든요. 촬영하는 장면마다 다 함께 즐기는 느낌으로 임할 수가 있으니까요. 정말 오래오래 잊지 못할 촬영 현장이었어요.

 

홍상현

<굿바이, 입술>이 작품 안팎에서 거두고 있는 가장 중요한 성취는 바로 ‘음악영화로서의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음악영화제에 초청될 정도의 작품이기도 하지만, OST 대신 고마츠ㆍ카도와키 두 배우가 직접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며 연기한 극중 듀오 ‘하루레오’의 음반까지 나와 인기를 끌었는데요.

시오타 아키히코

<굿바이, 입술>에서 고마츠ㆍ카도와키 배우는 통기타, 그리고 나리타 배우는 일렉트릭 기타를 연주하는데요. 실은 세 사람 모두 기타 연주가 거의 처음이었습니다. 카도와키 배우만 그저 코드를 몇 개를 잡을 줄 아는 정도였지요. 세 배우 모두 아예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느낌으로 2~3개월을 투자해 연습을 해주었어요. 심지어 다른 촬영현장에 가서까지. (웃음)

특히 고마츠 배우는 캐스팅될 당시만 해도 ‘노래는 절대 시키지 말아 달라’고 사정사정을 할 정도였는데, 막상 시나리오를 읽어보더니 “이런 캐릭터라면 노래를 꼭 불러야 되겠네요”라면서 열의를 보이더라고요. 그 결과가 <굿바이, 입술>의 레오입니다.

「굿바이, 입술」은 고마츠 나나ㆍ카도와키 무기ㆍ나리타 료, 세 배우의 케미스트리에 성패가 걸려있는 작품이지만, 시오타 아키히코 감독은 제작 초기 단계부터 전혀 걱정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세 사람 모두 영화를 좋아하니까. 상황만 허락한다면 영화 일만 하고 싶어 할 정도로. (주)엔케이컨텐츠
「굿바이, 입술」은 고마츠 나나ㆍ카도와키 무기ㆍ나리타 료, 세 배우의 케미스트리에 성패가 걸려있는 작품이지만, 시오타 아키히코 감독은 제작 초기 단계부터 전혀 걱정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세 사람 모두 영화를 좋아하니까. 상황만 허락한다면 영화 일만 하고 싶어 할 정도로. (주)엔케이컨텐츠

“<굿바이, 입술>은 사랑이 있고 음악이 있는 멋진 영화입니다.

고마츠 나나, 카도와키 무기, 나리타 료, 현재 가장 핫한, 아울러, 다음 세대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세 사람이 매력을 어떻게 끌어낼지에 집중한 작품이에요.

보고 나서 기뻐해주신 관객 분들이 많으셔서 감독인 저로서는 감사할 따름이지요. 한국 관객 여러분은 어떠실지 모르겠네요. 재능 있는 뮤지션들의 최선을 다해 만들어주신 OST도 아마 마음에 드실 겁니다. 아무쪼록 세 젊은이들의 연기도, 음악도 유쾌하게 즐겨주신다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인터뷰 원고를 정리하며 MP3 파일에 생생히 보존돼있던 시오타 감독의 음성을 들으니 ‘다시 불러주시면 꼭 참석해서 한국 관객 여러분 옆자리에 앉아 영화를 보고 싶다’던 그의 선한 미소가 떠올랐다.

2019년 11월 2일, 눅눅한 해양성기후 특유의 더위가 말끔히 사라진 늦가을 저녁이었다. 누구의 얼굴에도 마스크가 씌워져 있지 않고, 주먹을 살짝 맞부딪치는 어색한 인사도 필요 없던. 이튿날 후쿠시마 원전 인근에 방사선수치를 측정하러 떠날 예정이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통기타 선율이 귓가를 파고드는 라이브 신의 여운에 잠시나마 불안감을 잊을 수 있었던 덕분이리라.

깊은 욕조에 침잠해 있는 것 같은 시간 속에 두 번의 여름을 보내고 다시 <굿바이, 입술>의 하루레오가 투어를 떠나던 7월이 목전에 와있다. 그들의 청춘로드무비를 시원한 상영관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음을 더는 슬퍼하지 말고, 5일 이후에 서재 구석에 처박아둔 캐리어 속 버번을 꺼내 홈시어터를 꾸며놓은 지인의 작업실에나 찾아가 볼까.

홍상현 팩트체커  contact@newstof.com  최근글보기
정치학과 영상예술학 두 분야의 학위를 소지. 사회과학과 영화이론을 넘나드는 전문적 식견으로 한ㆍ일 양국 매체에 분석 기사를 쓴다. 파리경제대 토마 피케티와 『21세기 자본』 프로젝트를 진행한 도쿄대 시미즈 연구실 출신. 같은 학교 이미지인류학랩(IAL)의 네트워크 멤버였다.
2013년부터 월간 《게이자이》에서 담당하는 경제평론 지면은 에히메대 와다 제미나르의 교재로 쓰인다.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어쨌거나 괜찮아』 등 다수의 스테디셀러를 국내에 소개해 온 번역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비상근 어드바이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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